한자 | 韓美協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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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세계)/터 |
지역 | 미국 워싱턴 D.C. 17번가 노스웨스트 888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42년 12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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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미국 워싱턴 D.C. 17번가 노스웨스트 888 |
원어 주소 | 888 17th Street Northwest, Washington, DC 20006, USA |
영문 주소 | 888 17th Street Northwest, Washington, DC 20006, USA |
성격 | 터 |
1942년 한국에 대한 홍보와 선전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에 설립한 한미협회의 터.
이승만(李承晩)의 노력으로 1942년 12월 7일 한국인과 미국인 등으로 구성된 한미협회[The Korean American Council]를 「외국인대행기관등록법」에 따라 미국 법무부에 등록하였다. 한미협회의 설립 목적은 한국의 독립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얻기 위해 미국인의 동정을 확보하는 데 두었다. 조직은 처음 이사회와 전국위원회로 정했다가 이사회·후견인회·전국위원회로 정비하였다. 회장은 캐나다 대사를 지낸 제임스 H. 크롬웰(James H. R. Cromwell), 서기에는 제임스 W. 파머(James W. Farmer), 재무에는 기자 출신인 제이 제롬 윌리엄스(Jay Jerome Williams), 법률고문에는 존 W. 스태거스(John W. Staggers)가 있었다. 이승만과 그의 부인은 이사와 재무의 직책을 맡았고 1944년부터 순회 이사이자 한국인 총무를 신상근[James Shin]이 맡았다.
한미협회에 참가한 인사들을 보면 한국인으로는 이승만, 서재필, 신상근이 있고, 중국인은 작가인 린위탕[林語堂]과 중국군 대령인 치아 예첸,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Francesca) 등이고, 그 외는 모두 미국인으로 구성되었다. 한미협회 회장 크롬웰은 1942년 미국 국무부 장관 코델 헐(Cordell Hull)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과 임시정부에 대한 승인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크롬웰이 보낸 편지는 한미협회가 ‘Why Isn’t Korea Recognized?’라는 제목의 팸플릿으로 발간하였다. 법률고문 스태거스는 미국 국무 장관에게 두 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해 미국 정부가 차관을 제공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이와 같이 한미협회에는 정치계, 학계, 종교계 등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여 한국에 대한 홍보와 선전 활동을 벌였다.
한미협회 사무실은 미국 워싱턴 D.C. 17번가 노스웨스트 888에 있었다.
한미협회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건물은 없어지고, 현재는 그 자리에 브로너 빌딩(Brawner Building)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