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大韓民國通信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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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세계)/터 |
지역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체스트넛 스트리트 1524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건립 시기/일시 | 1919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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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체스트넛 스트리트 1524 |
원어 주소 | 1524 Chestnut Street, Philadelphia, PA 19102, USA |
영문 주소 | 1524 Chestnut Street, Philadelphia, PA 19102, USA |
성격 | 사무소 |
1919년 4월 대한민국통신부가 한국 독립을 위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마련한 사무실.
제1차 한인회의 이튿날인 1919년 4월 15일 미국 국민을 상대로 선전과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재필(徐載弼)은 이를 위한 전문적인 활동 기구 설립을 제안하였다. 일본이 을사늑약 이후 한국 지배에 대한 국제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왜곡된 선전 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친일 미국인을 고용하거나 이용하여 한국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재미 한국인들 역시 미국 사회에 일본의 한국 지배에 대한 부당성을 선전할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제1차 한인회의로 대규모 선전 외교 활동을 전개한 이후 상시적이고 장기적인 선전 외교 활동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서재필은 일본의 왜곡된 선전 활동의 폐해를 알고 조직적으로 대응할 것을 제안하였다. 서재필은 영문 잡지를 만들어 불법적인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면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국을 지지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대한인국민회는 4월 19일 중앙총회 제20차 위원회의에서 서재필을 외교 고문으로 임명하고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 대한민국통신부[Bureau of Information for the Republic of Korea]의 설립과 재정 지원을 약속하였다. 필라델피아 대한민국통신부는 서재필의 사무실과 인접한 필라델피아 시내에 사무실을 두고 개소되었다. 설립일은 1919년 4월 22일과 25일 설이 있다. 서재필은 한국에 관한 모든 사실을 미국 시민에게 알릴 것을 전제로 하여 첫째, 책자 발간을 통한 출판 선전 활동, 대중집회를 통한 강연 활동, 미국인들에 의한 친한 단체인 한국친우회의 조직과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대한민국통신부의 활동 방향으로 삼았다.
서재필이 선전 활동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영문 잡지 발간이었다. 미주 한인학생단이 발간하던 영문 잡지 『Freedom and Peace[자유와 평화]』를 인수하여 1919년 6월부터 『Korea Review[한국 평론]』를 발행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통신부에서는 한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미국 내 주요 도시에 ‘한국친우회(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를 조직하였다. 1919년 8월 이승만이 워싱턴 D.C.에 정식으로 구미위원부를 설치하자, 대한민국통신부는 그 관할하에 놓이면서 ‘필라델피아통신부’로 불렸다. 체계상 대한민국통신부는 워싱턴의 구미위원부 산하 기구이다. 하지만 서재필이 미국 시민이고, 또 한말 국내에서 개화·개혁운동의 선구자이기 때문에 재정상 매월 800달러 정도의 지원을 받고, 대한민국통신부의 운영은 서재필에게 전적으로 맡겨졌다. 대한민국통신부는 워싱턴 회의가 끝나고, 『Korea Review』 1922년 7월호를 마지막으로 활동이 중단되었다.
대한민국통신부가 있었던 웨이트먼 빌딩(Weightman Building)은 현재 3층 건물로, 1층은 상가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