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한족연합위원회 워싱턴사무소 터

한자 在美韓族聯合委員會-事務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세계)/터
지역 미국 워싱턴 D.C. 케이 스트리트 노스웨스트 171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4년 6월 10일
소재지 미국 워싱턴 D.C. 케이 스트리트 노스웨스트 1719
원어 주소 1719 K Street Northwest, Washington, DC 20006, USA
영문 주소 1719 K Street Northwest, Washington, DC 20006, USA
성격 사무소
정의

1944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선전, 외교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외교 사무소.

변천

1941년 4월 미주 지역 한인의 최고 기관으로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결성되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받은 주미외교위원부가 워싱턴 D.C.에 설치되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는 중국 충칭[重慶]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 활동을 원조하기 위해 ‘중경특파원’을 보내기로 하였고, 중경특파원으로 김호(金乎)전경무(田耕武)를 임명하였다. 중경특파원으로 임명된 전경무는 워싱턴 D.C.의 주미외교위원부에 파견되었다. 이때 그는 이승만에게 대미 외교의 활성화를 위해 사무 확장과 외교 방법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주미외교위원부에서 한인들의 실제 활동과 계획에 필요한 외교 방법을 개선하기 어려우니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자체에 외교 사무소를 마련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같은 전경무의 제안에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동의하면서 워싱턴 외교 사무소 설립을 추진해 나갔다.

1943년 12월 23일 동지회(同志會)가 워싱턴사무소 개설 문제 등을 이유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탈퇴를 선언하게 되었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는 독자적으로 선전·외교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1944년 6월 10일 워싱턴 D.C.에 외교 사무소를 설립하였다. 워싱턴사무소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에서 김원용(金元容)·도진호·전경무 3명과 집행부에서 김용중(金龍中) 등 4명을 선임하였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는 위원장 김원용과 대외 교섭 업무를 맡은 선전부장 전경무만이 외교 활동을 하였다. 선전부장 전경무는 워싱턴사무소에서 선전 외교 활동의 일환으로, 뉴욕 컬럼비아 라디오 방송본부에서 미국 전역을 상대로 ‘한국은 왜 독립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세 번이나 방송을 하였다. 미국의 라디오 방송이나 교육부 등 주요 기관, 그리고 각종 집회에 참석하여 연설로 한국 문제를 선전하고 미국인의 동정을 얻고자 하였다. 1945년 워싱턴사무소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김원용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장이 되어 하와이로 가자, 전경무가 워싱턴사무소에서 외교 활동을 주도적으로 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및 의사부와 협의하여 워싱턴사무소에 연구부·선전부·교섭부를 두고 인원도 증원하여 조직을 크게 확충하였다.

위치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워싱턴사무소는 미국 워싱턴 D.C 케이 스트리트 노스웨스트 1719에 있었다.

현황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워싱턴사무소가 있었던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그 자리에 ‘에이런트 폭스(Arent Fox) LLP’의 빌딩이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 고정휴, 『이승만과 한국 독립운동』(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조사 보고서』9(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2009)
  • 홍선표, 『재미 한인의 꿈과 도전』(연세대학교 출판부, 2011)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