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 in Washing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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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國親友會 |
영문 | 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 in Washingt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세계)/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워싱턴 D.C.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19년 10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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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 in Washington |
성격 | 친한 단체 |
1919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후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
미국 사회에서 조선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고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후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한국친우회[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는 미국과 유럽의 친한적인 인사들이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후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로서, 1919년 4월 제1차 한인회의 당시 서재필의 제안과 플로이드 W. 톰킨스(Floyd W. Tomkins) 목사의 지지와 협력에 의해 결성되었다.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한국친우회가 결성된 이후인 6월 6일 워싱턴 D.C.에서 첫 번째 대중집회를 가졌고, 회장 톰킨스 목사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대중집회와 공개 서한 발송 등 선전 활동을 벌였다.
워싱턴 D.C.에서는 1919년 10월 1일 보일[G. L. Boyle] 상원의원을 회장, 조지 W. 스턴[George W. Stearn]을 부회장, 오튼버그[Louis Ottenberg]를 서기, 콜린스 부인[Mrs. M. D. Collins]을 회계로 하는 워싱턴 한국친우회가 조직되었다. 워싱턴 한국친우회는 100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었고, 실행위원회와 공공집행위원회를 두었다. 실행위원회의 위원은 서재필, 스턴, 콜린스 등이었고, 공공집행위원회의 위원은 젭[Rudolph de Zepp], 오텐버그, 스턴 등이었다. 1920년 1월에는 벡[S. A. Beck] 목사가 실행 간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10월 1일 워싱턴 한국친우회가 결성되어 미국 내 한국을 후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고 주요 지도자와 주요 단체들과 공동 활동에 주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