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신보』 발행지

한자 三一新報發行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세계)/터
지역 미국 뉴욕주 뉴욕시 이스트 22번가 4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소재지 미국 뉴욕주 뉴욕시 이스트 22번가 43
원어 주소 43 East 22nd Street, New York, NY 10010, USA
영문 주소 43 East 22nd Street, New York, NY 10010, USA
성격 신문사
정의

일제 강점기 미국 뉴욕주 뉴욕에서 뉴욕 한인교민단의 기관지 『삼일신보』를 발행한 장소.

변천

1924년 뉴욕의 한인 교민들과 유학생들은 뉴욕 한인교민단을 결성하였는데, 이들에 의해 1928년 6월부터 1930년 6월까지 『삼일신보(三一新報)』가 주간으로 발간되었다. 『삼일신보』는 뉴욕 교민단 단장 허정(許政)과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뉴욕에서 유학을 하던 장덕수(張德秀)에 의해 발간이 추진되었는데, 미주에서 3.1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한인들의 단합을 위해 1928년 3월 1일을 계기로 『삼일신보』라는 대중 신문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신문 발간을 위해 동아일보사에 주문한 활자가 늦어져 그해 6월 28일 창간호를 발행하게 되었다.

『삼일신보』의 주요 발기인은 허정, 장덕수, 홍득수(洪得洙), 신성구, 송세인, 이봉수, 김양수(金良洙), 윤홍섭, 김도연(金度演), 최순주, 서민호 등 유학생과 한인교민단 단원들이 중심이 되었다. 재정은 허정, 윤홍섭, 신성구가 담당하였고, 신문 제작은 장덕수가 맡기로 하였다. 『삼일신보』의 임원은 사장에 허정, 주필에 김양수, 편집에 장덕수, 김도연, 최순주, 영업은 홍득수, 재정은 신성구가 맡았다. 허정의 회고에 의하면, 『삼일신보』는 노농대중을 위한 진보적 성격의 언론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원용이승만을 후원하여 민중의 후원이 없어서 폐간되었다고 하였다.

『삼일신보』는 사장 허정이 워싱턴 D.C. 구미위원부의 위원장으로 가게 되었고, 1929년에는 뉴욕에서 유학을 하던 장덕수가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신문 발간이 어렵게 되었다. 그 후 이기붕(李起鵬)이 맡았지만 창간 2년 만인 1930년 6월 폐간을 하고 말았다.

위치

『삼일신보』를 발행하였던 신문사는 맨해튼(Manhattan)의 중심가인 뉴욕주 뉴욕시 이스트 22번가[East 22nd Street] 43에 있었다.

현황

『삼일신보』의 발간지인 뉴욕 이스트 22번가 43은 현재 없어졌고 이스트 22번가 41이 합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의의와 평가

『삼일신보』는 3.1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미주 한인들의 단합을 위해 뉴욕의 한인 교민과 유학생들이 발행하였다.

참고문헌
  • 김원용, 『재미 한인 오십 년사』(리들리 캘리포니아, 1959)
  • 허정, 『내일을 위한 증언』(샘터사, 1963)
  • 이경남, 『설산 장덕수』(동아일보사, 1981)
  •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조사 보고서』14(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2014)
  • 「삼일신보」(『신한민보』, 1929.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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