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愛國同志代表會議開催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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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세계)/터 |
지역 |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배넉 스트리트 덴버 웨스트 13번 애비뉴 |
시대 | 근대/개항기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8년 7월 11일~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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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배넉 스트리트|덴버 웨스트 13번 애비뉴 |
원어 주소 | Bannock Street&West 13th Avenue, Denver, CO 80202, USA |
영문 주소 | Bannock Street&West 13th Avenue, Denver, CO 80202, USA |
성격 | 애국동지대표회의 개최 장소 |
1908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애국동지대표회의가 개최된 장소.
미주 각 지역의 한인 대표들은 한인 단체의 통합과 한국의 독립을 옹호하기 위해 1908년 7월 11일부터 14일까지 콜로라도(Colorado)주 덴버(Denver)의 그레이스감리교회[Grace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애국동지대표회의(愛國同志代表會議)’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가 열린 배경에는 1908년 3월 23일 캘리포니아(California)주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일어난 장인환(張仁煥)과 전명운(田明雲)의 친일 외교관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 사살 의거가 계기로 자리하였다.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이후 미주 한인 사회에서는 통합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이러한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박용만(朴容萬)이 애국동지대표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1908년 1월 박용만은 덴버에서 임시회를 열고 ‘애국동지대표회의 발기 취지서’를 작성하여 북미와 하와이, 그리고 러시아 한인 단체에 대표 파견을 요청하였다. 박용만은 덴버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대회에 맞춰 애국동지대표회의를 개최하여 배일적인 민주당 인사들에게 일본의 한국 침략 의도를 폭로하려고 하였다.
애국동지대표회의는 1908년 7월 11일 덴버의 그레이스감리교회에서 개최되었는데, 7월 12일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3일간 개최되었다. 7월 11일 대회 개회 전에 회장에 이승만(李承晩), 국문 서기에 박용만, 영문 서기에 윤병구(尹炳求)를 선임하였고, 오전 9시 30분 애국가 제창 후 이승만이 개회 취지 설명 및 각 대표 위임장 낭독을 하고 개회하였다.
대회 개최 첫날 『덴버타임스』는 ‘한국 애국자들이 덴버에 모여 전쟁을 준비하다’라는 제목으로, “애국 동지들은 해외 한인 애국단체들을 조직한 지 오래이며, 그들은 해외 각국의 조직을 총괄할 조직을 만들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라고 보도하였다. 애국동지대표회의에 참석한 인원은 대략 36명에서 50명으로 추산된다. 3일간의 애국동지대표회의에서는 향후 국내외 통일 기관을 조직할 것, 통신부를 설치하여 상호 간에 연락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둔전병(屯田兵)제에 바탕한 군사학교 설립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박용만은 군사학교 결의안에 따라 1909년 6월 초순 국외에서 최초로 군사학교인 한인소년병학교를 네브래스카(Nebraska)주 커니(Kearney) 농장에서 창설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국동지대표회의의 통합론에 따라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와 북미의 공립협회가 통합하여 1909년 2월 국민회가 탄생하였다.
애국동지대표회의가 개최되었던 그레이스감리교회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배넉 스트리트(Bannock Street)&웨스트 13번 애비뉴(West 13th Avenue)에 있었다.
애국동지대표회의가 개최되었던 덴버의 그레이스감리교회 건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그 장소는 현재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레이스감리교회는 1968년에 그레이스연합감리교회[Grace United Methodist Church]로 명칭을 변경하고 덴버 이스트 예일 애비뉴 4095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