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구미위원부[파크 로드]

한자 -歐美委員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세계)/터
지역 미국 워싱턴 D.C. 파크 로드 노스웨스트 131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6년
소재지 미국 워싱턴 D.C. 파크 로드 노스웨스트 1310
원어 주소 1310 Park Road Northwest, Washington, DC 20010, USA
영문 주소 1310 Park Road Northwest, Washington, DC 20010, USA
성격 사무소
정의

1927년 미국 워싱턴 D.C. 파크 로드에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사무실 겸 숙소.

개설

1919년 8월 25일 창설된 워싱턴 D.C. 구미위원부[H 스트리트]는 1925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구미위원부 폐지령이 내려진 이후 재정 부족에 따라 사무실을 이전하게 되었다. 구미위원부 사무실은 처음에 워싱턴 D.C.에 있는 콘티넨탈 트러스트 빌딩에 두었으나, 재정 곤란으로 인해 부득이 파크 로드의 개인주택으로 이전하였다.

변천

1925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구미위원부 폐지령이 내려진 이후 재정 부족에 따라, 구미위원부 사무실을 이전하게 되었다. 구미위원부에는 3명의 위원과 서기, 재무가 있었으나 재정 부족으로 위원 1명이 위원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26년 8월 말 구미위원장으로 취임한 김현구는 재정적 곤란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구미위원부 관사를 매입하여, 임대료 수입으로 사무실 운영비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1928년 5월 14일 구미위원장 김현구(金顯九)이승만(李承晩)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현하의 곤황은 하루가 다르게 심하여 세금과 집값의 월세를 아직 내지 못한 지가 두 달이나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당시 구미위원부는 관사가 없기 때문에 사무실을 높은 임차료를 내고 임대해야 했고, 또 직원들은 호텔에서 거주해야만 했다. 김현구구미위원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1928년 3월 24일 이승만에게 “위원부 유지의 장구책으로는 가옥 매입 계획을 성사시키는 일보다 더 나은 길이 없을 듯합니다. 지금 만일 가옥 한 채가 있어 1,000~2,000달러 들여서 고쳐 놓는다면, 뒤에 그 집에서 100달러 내지 150달러를 매월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편지를 보냈다.

구미위원장 김현구는 1928년 3월 구미위원부 관사 매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북미 지역을 순행하였으며, 1929년에는 미국 본토 곳곳을 순행하였다. 그 후 김현구구미위원부 관사를 매입하고 월부식으로, 관사 매입 자금을 갚아 나갔다. 그 후 김현구이승만의 부름을 받고 1929년 10월 하와이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구미위원부는 윤치영(尹致暎)이 워싱턴으로 와서 인계받았다. 구미위원부를 인계받은 윤치영은 “다행히 리 박사의 외교 노력의 결과이겠지만 워싱턴 시 중심으로부터 서북부에 위치한 도로변에 있는 아담한 3층 건물이 구미위원부의 체모를 유지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정확한 번지수는 워싱턴 시 서북구 파크가 1310번지였다. 이것도 은행 융자로 구입하여 매월 일정액을 불입해 나가는 방식으로 정식 소유주는 은행인 것이고, 연체로 밀린 액수가 상당한데 이런 적자 상태의 재정을 인수인계 받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위치

워싱턴 D.C. 구미위원부[파크 로드] 건물은 미국 워싱턴 D.C. 파크 로드 노스 웨스트(Park Road North West) 1310에 있었다.

현황

미국 워싱턴 D.C. 파크 로드 구미위원부 관사는 3층으로 된 단독주택이었다.

참고문헌
  • 윤치영, 『동산회고록: 윤치영의 20세기』(삼성출판사, 1991)
  • 우남이승만문서편찬위원회, 『우남이승만문서』(연세대학교 현대한국학연구소, 1998)
  • 고정휴, 『이승만과 한국 독립운동』(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17(국사편찬위원회, 2007)
  • 유영익, 『이승만 동문 서한집』중(연세대학교 출판부, 2009)
  • 김현구, 『김현구의 자서전』2
  • 김현구, 『우남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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