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Lawrence Cafete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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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永韶- |
영문 | Lawrence Cafeteria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세계)/터 |
지역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시 웨스트 로렌스 애비뉴 325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건립 시기/일시 | 192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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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시 웨스트 로렌스 애비뉴 3252 |
원어 항목명 | Lawrence Cafeteria |
원어 주소 | 3154 West Lawrence Avenue, Chicago, IL 60625, USA |
영문 주소 | 3154 West Lawrence Avenue, Chicago, IL 60625, USA |
성격 | 식당 |
일제 강점기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시 웨스트 로렌스 애비뉴에서 독립운동가 강영소와 그의 형제들이 운영하였던 카페테리아 터.
강영소(姜永韶)는 1916년과 1920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였던 미주 지역의 독립운동 지도자이다. 강영소는 1917년 후반 일리노이(Illinois)주 시카고(Chicago)에 정착하였고, 1918년에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를 복설할 때 서기 겸 재무로 선출되었다. 1919년 당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재무를 맡고 있었는데, 황사용(黃思溶)과 함께 하와이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한인 사회를 통합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 후 하와이에서 1년 6개월 동안 사업과 계몽 활동을 하고 캘리포니아(California)주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로 다시 돌아왔고, 곧바로 시카고로 갔다.
강영소가 시카고로 오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양식당을 운영하던 강영상(姜永商)이 동업하기 위하여 시카고로 옮겨 왔다. 강영소는 처음 천세헌(千世憲)과 함께 동업하여 카페테리아를 운영하다가 시카고에서 크게 카페테리아를 경영하고 있던 김경(金慶)의 도움을 받아 1922년 후반에서 1923년 초반 사이에 식당을 개업하였다. 처음 상호명은 ‘로렌스 카페테리아(Lawrence Cafeteria)’였고 9개의 테이블로 사업을 시작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1926년 당시 로렌스 카페테리아의 자본금은 3,000달러이고, 직원은 6명, 연 매출액은 3만 달러였다. 그 후 강영소의 형제들은 1926년 웨스트 디버시 파크웨이(West Diversey Parkway) 652에 카페테리아를 사서 디버시 카페테리아(Diversey Cafeteria)라는 식당을 개업하였다.
1930년 말 강영소 형제들은 강씨형제 카페테리아회사[Kang Brothers Cafeteria CO.]를 설립하고 로렌스와 디버시 두 지역에서 카페테리아를 경영하였다. 1929년 당시 로렌스 카페테리아에서 일했던 한승인은, “로렌스 식당은 시카고에서 유명한 강씨 5형제가 경영하는 식당이다. 그 5형제 중 둘째인 강영소는 한학(漢學)에 대한 조예가 깊고 훌륭한 애국자로서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가 조직한 북미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의 간부로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으며, 국민회에서 발행하는 『신한민보(新韓民報)』와 상하이임시정부를 후원하는 애국 운동에 많은 뒷받침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고학생들을 이모저모로 많이 도와준다.”라고 하였다. 강영소는 카페테리아를 경영하는 것 이외에 시카고 한인 사회의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신한민보사 시카고지국을 총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931년 8월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이에 강영소가 경영하던 로렌스 카페테리아도 파산 위기를 맞았고, 병이 재발하여 1934년 8월 26일 사망하였다.
시카고 강영소 카페테리아[로렌스 애비뉴]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시 웨스트 로렌스 애비뉴 3148에 있었다.
미주 지역 독립운동가 강영소의 형제들이 미국 시카고 로렌스 애비뉴에서 카페테리아를 운영하였고, 이들이 얻은 영업이익 가운데 일부는 한인 사회와 한인 단체,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