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호 사건

원어 항목명 Murder Case Against Oh In-ho
한자 吳寅鎬事件
영문 Murder Case Against Oh In-h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세계)/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8년 4월 25일
발생|시작 장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종결 장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원어 항목명 Murder Case Against Oh In-ho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오인호|오기병
정의

195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흑인 청소년들이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를 살해한 사건.

개설

1958년 4월 25일 밤 9시경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주변 해밀턴 36번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吳寅鎬)[당시 26세]가 한국에 있는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집 앞에 있는 우체통으로 다가가는 순간 영문도 모른 채 일방적인 공격을 받았다. 11명의 흑인 청소년들에게 주먹질과 발길로, 깨어진 유리병으로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오인호는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오인호는 이스튼대학에 유학하여 졸업한 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경과

오인호 사건이 벌어진 후 이틀 만에 범인들이 전원 체포되었다. 범인들은 근처에서 열리는 청소년 댄스파티 입장료 35센트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오인호 사건 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언론들은 대서특필하며 일제히 머리기사로 다루었다. 필라델피아 시장까지 참석한 오인호의 장례식에 수많은 조문객이 고인을 추모하였다. 사람들은 35센트 때문에 사람을 죽인 범인들의 비인간성에 경악했고, 폭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잔혹함에 분노하였다.

이후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한국에서 편지 한 통이 전달되었다. 사망한 오인호의 아버지 오기병의 편지였다. 오기병은 부산 영도교회의 장로였다. 오기병은 “가족들은 슬픔과 충격을 받았지만, 가장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청원하기로 결정하였다. 교육적 빈곤이 살인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이들이 석방된 뒤에 직접 교육 및 사회 적응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금을 적립하기로 하였다.”며 살인자들을 용서한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와 500달러를 함께 보내왔다.

결과

오인호의 아버지 오기병의 편지는 미국 사회에 감동을 주었다. 아들을 살해한 이들에게 용서와 사랑의 손을 내민 오인호의 부모에게 큰 감동을 한 것이다. 이후 필라델피아에서는 오인호 추모를 위한 모금을 하였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한국인 유학생을 위하여 쓰겠다고 발표하였다. 오인호가 졸업한 이스턴대학은 오인호 장학금과 함께 도서관에 ‘오인호 기념 콘퍼런스룸’을 만들어 오인호가 사망한 4월 전후에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오인호 사건은 아들을 죽인 범인들을 처벌하지 말고 용서해 달라는 아버지의 편지로 미국 사회에 많은 감동을 주었다.

참고문헌
  • 「한국 유학생 오군 피살」(『경향신문』, 1958. 4. 27.)
  • 「유흥비 뺏고자 오군을 살해」(『조선일보』, 1958. 4. 29.)
  • 「오군 양친 관용을 찬양」(『조선일보』, 1958. 5. 5.)
  • 「미국서 추도 모금」(『경향신문』, 1958. 5. 7.)
  • 「십년 집행유예」(『부산일보』, 1960. 7. 2.)
  • 「아들 죽인 범인 용서한 한국인 부모, 미국인들에게 감동」(『뉴스엠』, 2007.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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