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The Korean-American Counc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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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美協會 |
영문 | The Korean-American Counci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세계)/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42년 1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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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미국 워싱턴 D.C. |
원어 항목명 | The Korean-American Council |
성격 | 친한 단체 |
설립자 | 이승만 |
1942년 1월 16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이승만의 주도로 설립된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단체.
한미협회는 한국·미국·중국인으로 구성된 단체이다.
한미협회는 충칭[重慶]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제적 승인을 얻도록 지원하기 위해 미국인들의 지지 확보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41년 4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서 대미 외교를 전담할 기관으로 주미외교위원부가 설치되었고, 이승만이 외교 책임자가 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승만은 외교 활동과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울 목적으로 유력한 외국인들로 구성한 한미협회를 조직하였다.
한미협회는 1919년 서재필(徐載弼)과 톰킨스(F. W. Tomkins)가 설립한 한국친우회를 본뜬 것으로 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지원하게 할 목적에서 조직하였다. 이승만은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 공식 임명을 받은 1941년 6월 이후에 한미협회의 설립 작업을 시작했고, 1941년 9월에는 사무실을 열 정도로 조직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1942년 1월 16일 워싱턴 D.C.에서 창설되었고 1942년 12월 7일 「외국인대행기관등록법」에 따라 미국 법무부에 정식으로 등록하였다.
제임스 H. R. 크롬웰(James H. R. Cromwell), 제임스 W. 파머(James W. Farmer), 제이 제롬 윌리엄스(Jay Jerome Williams), 존 W. 스태거스(John W. Staggers) 등으로 이사회를 구성하였다. 윌리엄 R. 바버(William R. Barbour), 플로렌스 W. 깁슨(Florence W. Gibson), 폴 F. 더글러스(Paul F. Douglass) 박사, 호머 B.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 필립 J. 자페(Philip J. Jaffe), 사무엘 W. 킹(Samuel W. King), 윌리엄 H. 리치(William H. Leach) 박사, 루퍼스 W. 위버(Rufus W. Weaver) 박사, 알프레드 J. 라이트(Alfred J. Wright) 박사 등으로 전국위원회도 구성하였다.
한미협회는 워싱턴 D.C. 외에도 오하이오주의 애크런(Akron), 애슐랜드(Ashland), 캔턴(Canton)에도 지부를 결성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승만을 미주 한인 사회와 한국 독립운동계의 최고 지도자인 양 미국 정부와 정가에 선전하는 활동도 하여, 이승만에 대한 반감이 컸던 한길수(韓吉洙) 등이 한미협회 유해론을 확대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한미협회는 이사회와 전국위원회로 조직이 편성되었다가, 이사회·후견인회·전국위원회로 조직을 개편하였다.
한미협회는 유력한 미국인들이 참여하여 미주 지역에서의 한국 독립운동 추진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