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Korean Recognition Confere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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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國獨立承認大會 |
영문 | Korean Recognition Conferenc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세계)/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미국 오하이오주 애슐랜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44년 1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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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44년 1월 22일 |
발생|시작 장소 | 미국 오하이오주 애슐랜드 |
종결 장소 | 미국 오하이오주 애슐랜드 |
원어 항목명 | Korean Recognition Conference |
성격 | 독립운동 승인 대회 |
관련 인물/단체 | 이승만|이원순|호머 헐버트|마이어스|폴 F. 더글러스 |
1944년 1월 21일부터 22일까지 미국 오하이오주 애슐랜드에서 열린 한국 독립 승인 대회.
1943년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이 승인되자 이승만(李承晩)이 재미 한인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오하이오주 애슐랜드(Ashland)에서 한국독립승인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이승만은 주미외교위원부 통신 제55호[1943년 12월 20일자]를 통해 “우리가 아직 잃은 강토만 못 찾았지 독립은 찾아 놓은 민족이니, 우리의 쾌활한 자유 기상과 열렬한 애국심을 드러냅시다.”라고 하면서 재미 한인들의 참석을 요청하였다. 한국독립승인대회에는 이원순(李元淳)을 비롯한 이승만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고,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박사, 한미협회 인사들 등도 참석하였다. 대회가 열린 애슐랜드의 메인스트리트(Main Street)에는 미국 국기와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한국인들 환영’이라는 표지가 걸려 있었다.
한국독립승인대회는 첫날인 1944년 1월 21일에는 교회와 학교, 컨트리클럽 등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오찬 연설회와 만찬 연설회로 진행되었다. 오찬 연설회는 애슐랜드중학교 옆인 브레턴 3번가[Breton 3nd Street]에 있는 제일장로교회에서 열려 60여 명이 참석했고, 만찬 연설회는 오후 7시에 컨트리클럽에서 열렸다. 이튿날 1월 22일에는 오후 2시부터 애슐랜드중학교 강당인 존 A. 맥도웰 오디토리엄(John A. MxDowell Auditorium)에서 라디오 방송 연설회로 진행되었다. 가이 D. 마이어스(Guy D. Myers) 여사가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아메리칸대학교 총장인 폴 F. 더글러스(Paul F. Douglass)가 이승만을 소개하였다. 하와이를 포함하여 전국 114개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중계되었고, 클리블랜드(Cleveland)의 더블유에이치케이(WHK)와 상호 방송으로 진행되었다. 방송 연설회가 끝난 후에는 강당에서 출발하여 시내 중심가를 통과하는 퍼레이드가 열렸다.
한국독립승인대회는 카이로선언의 내용을 알려 재미 한인들이 한국의 독립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