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The Christian Friends of 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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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國基督敎人親韓會 |
영문 | The Christian Friends of Korea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세계)/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원어 항목명 | The Christian Friends of 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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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친한 단체 |
설립자 | 이승만 |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도록 하기 위해 이승만이 조직하여 설립한 순수 미국 기독교인 단체.
한국기독교인친한회는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돕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미국이 승인하게 하는 활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 이승만(李承晩)이 조직하여 설립한 친한 기독교인 단체이다. 1941년 4월 호놀룰루에서 열린 해외한족대회에서 대미 외교 전담 기관으로 주미외교위원부가 설치되었고, 이승만이 책임자가 되어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승만은 자신의 외교 활동과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도록 하기 위해 유력한 미국 기독교인들로 구성한 한국기독교인친한회를 조직하였다. 한국기독교인친한회는 정치적인 활동 참여를 주저하는 순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조직하였다. 설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1943년 2월 9일자 한국기독교인친한회장의 명의로 서신을 보낸 것으로 보아 1943년 초에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독교인친한회의 주요 임원은 회장 폴 F. 더글러스(Paul F. Douglass) 아메리칸대학교 총장, 서기 겸 재무 한국 선교사로 활동한 올리버 알 애비슨(Oliver R. Avison), 서기 제럴딘 T. 피치(Geraldine T. Fitch 여사, 재무 모리스 윌리엄(Maurice William), 법률 고문 존 W.스태거스(John W. Staggers) 등이었다. 한국기독교인친한회의 조직과 설립에는 1880년대 후반부터 의료 선교 활동을 하며 이승만과 친교를 쌓은 올리버 알 애비슨의 역할이 컸다. 올리버 알 애비슨은 한국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이승만을 도울 수 있는 한국기독교인친한회의 설립에 적극적이었다.
한국기독교인친한회는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한국기독교인친한회는 이승만이 제안한 편지 쓰기 운동을 추진하였다. 편지 쓰기 운동은 미시간주 출신 하원 의원 월터 H. 저드 오브라이언(Walter H. Judd O'Brien)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 문제를 의회에 제기했다가 미국 의회가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 유안한 것을 알게 된 이승만이 추진하였다. 한국기독교인친한회가 설립된 직후 전개한 첫 번째 대외 활동이었고, 미국 사회에서도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한국기독교인친한회는 1943년 4월 8일에 아메리칸대학교 교내에서 한미협회 및 주미외교위원부와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제24주년 기념식을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한국기독교인친한회는 미국 기독교인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과 독립을 돕도록 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