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Immigration of Korean American Doctors and Nurses to the United Stat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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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國系醫師看護師-美國移民 |
영문 | Immigration of Korean American Doctors and Nurses to the United State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세계)/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미국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Immigration of Korean American Doctors and Nurses to the United Stat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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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초창기에 이주한 한국계 의사 및 간호사.
광복 이전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로 활동한 재미 한인은 조지워싱턴(George Washington)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의 서재필(徐載弼),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한국인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루이빌(Louisville)대학교 의과대학의 오긍선(吳兢善), 1927년 미국에 유학하여 버지니아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최제창(崔濟昌) 등이 있었다. 이들은 재미 한인 의료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한 개척자들이었다. 광복 이후 미국에 이주한 한국계 의사와 간호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입국했으며, 1965년 미국의 「이민 및 민족법」 시행은 의료 분야의 전문직 이주를 촉진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재미 한인 의사와 간호사의 의료계 진출과 활동을 살펴볼 것이다.
광복 직후 미군정청(美軍政廳)은 보건 후생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의료와 관련된 전문 인력을 선발하여 미국으로 연수를 보냈다. 1945년 11월 미군정청은 최제창, 백행인(白行寅), 윤유선(尹裕善) 등 10명의 한국인 의사를 존스홉킨스(Johns Hopkins)대학교, 미시간대학교, 하버드(Harvard)대학교 등 3개 보건대학원에 보내 연수시켰다. 미군정청에 의해 파견된 최초의 보건의료 부문의 미국 연수생이었다. 1년~2년의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의사들은 한국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함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이들과는 달리 유학생 자격으로 의과대학 또는 간호대학에 진학한 재미 한인들도 있었다. 1947년 미국으로 건너와 버지니아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현봉학(玄鳳學), 1948년 도미하여 존스홉킨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임길재(任吉宰), 1951년 입국하여 뉴욕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한 윤종선(尹淙善), 1959년 입국한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전공자 노용면(盧鎔冕), 1953년 미국에 건너와 마운트시나이(Mount sinai)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한 송선규(宋璇圭), 1962년 도미하여 토머스제퍼슨(Thomas Jefferson) 의과대학 교수를 지낸 정구영(鄭求榮) 등이 있었다.
한인 간호사들의 미국 진출은 개인 단위의 유학이나 방문으로 1947년부터 시작되었다. 1947년 유순한, 1953년 이송희, 1955년 이종선, 1957년 차상옥 등이 간호사로 활동하였다. 의사, 간호사로 활동한 재미 한인들은 각자의 전공을 살려 병원에 근무하거나 개업했으며, 1960년대를 전후해 형성된 한인 사회의 리더, 봉사자로 공헌하였다. 뿐만 아니라 재미 한인의 의료계 위상의 제고와 함께 모국 의료계와 교류하는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1965년 개정된 「이민 및 민족법」의 시행은 1965년부터 1970년 사이의 한인 이민을 주도하였다. 유학생, 간호사, 의사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 온 한인들은 영주권 취득과 함께 모국의 가족을 초청하면서 재미 한인 이민자의 증가와 함께 한인 이민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965~1973년까지 한국인 의사 3,000명, 간호사 2,500명, 약사 800명, 치과의사 100명 등 6,400명의 한국 의료 전문 인력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이들 중 1/3 이상이 뉴욕주, 뉴저지(New Jersey)주, 코네티컷(Connecticut)주 등 3개 주를 연결하는 동부 지역에 정착했으며, 의사는 약 1,200명이었다.
뉴욕의 의료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인들의 절대 다수가 1965~1973년에 들어온 이민자였다. 뉴욕과 뉴저지 지역은 병원 및 다른 의료 시설이 많이 증가하여 의료계 전문 인력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국,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유인하였다. 아시아계 의료 전문 인력은 가정의, 방사선과와 같은 인기가 없는 분야의 자리를 채웠으며, 백인 의사들이 진료를 기피하는 저소득의 소수민족 지역의 빈자리를 충원하였다.
한편 재미 한인 의사들은 1974년 10월 23일 재미 한인의사회를 창립했고, 간호사들은 1979년 11월 10일 뉴욕 플러싱 YMCA에서 뉴욕 한인간호사협의회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재미 한인 이민 사회에서 의료 분야에 진출한 의사와 간호사들의 역할은 양적인 성장과 함께 모국 송금, 한인 사회의 기반을 구축한 개척자, 미국의 선진 의료 지식을 고국에 전해준 교육자, 미국 주류사회와의 교류에 앞장선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