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한인회의

원어 항목명 The First Korean Congress in 1919
한자 第一次韓人會議
영문 The First Korean Congress in 1919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세계)/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4월 14일
종결 시기/일시 1919년 4월 16일
발생|시작 장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종결 장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원어 항목명 The First Korean Congress in 1919
성격 독립운동 후원 대회
관련 인물/단체 서재필|이승만|정한경
정의

1919년 4월 14일부터 4월 16일까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리틀극장에서 개최된 한국 독립운동 후원 대회.

개설

제1차 한인회의[First Korean Congress]는 미주 사회의 한인들이 3.1운동에 대한 공식 입장을 표명하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하기 위해 개최한 대회로서, 미주 한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3.1운동이 미주의 한인 사회에 알려지면서 한인 이민자들도 한국의 독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주 한인들은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의 방략을 청원 외교 활동에서 선전 외교 활동으로 전환하고,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회의를 개최하였다.

제1차 한인회의는 준비가 급하게 이루어지면서 한인들의 수가 적은 미국 동부 지역에서 개최되어 많이 참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미국 중동부 지역 한인 유학생들의 협조로 대회는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제1차 한인회의를 필라델피아에서 개최한 것은 서재필(徐載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재필은 실질적인 대회 준비와 운영을 총괄했고, 연사 초청, 장소 선정, 미국 독립기념관으로의 시가행진에 필요한 필라델피아시 측의 협조 등 준비와 관련한 주요 업무들을 전담하였다.

역사적 배경

3.1운동을 계기로 한국인의 독립 열망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은 미주 한인들의 절실한 바람이었다. 당시 미주 한인 사회는 파리강화회의를 한국 독립의 좋은 기회로 판단하고 이승만(李承晩)정한경(鄭翰景)을 한인 대표로 선정하여 파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 문제를 일본의 국내 문제로 간주하며 한인 대표에게 여권을 발급해 주지 않아, 한인 대표의 파리강화회의 참여는 좌절되었다. 3.1운동 소식은 이런 상황에서 미주 지역에 전파되었고, 미주 한인 사회가 독립운동의 활기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경과

제1차 한인회의는 3.1운동 직후에 미주 한인 사회에서 처음으로 선전 외교 활동을 전개한 것이었다. 이승만·서재필·정한경 등이 미주 지역에서 3.1운동에 대한 한인들의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1919년 4월 14일부터 4월 16일까지 필라델피아 시내 리틀극장에서 개최하였다. 목적은 일제의 불법적인 식민 통치와 식민지 한국의 실상을 알리고 우리 민족이 전개한 3.1운동을 선전하여, 한국의 독립과 새로운 독립국가 수립 열망을 미국 사회에 알리는 것이었다.

결과

제1차 한인회의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필라델피아시 당국에서 제공한 군악대의 협조를 받아 한국과 미국의 국기를 양손에 들고 리틀극장에서 미국 독립기념관까지 시가행진을 하였다. 제1차 한인회의의 영향은 미주 한인 사회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독립 경축일로 이어졌고, 3.1운동의 열기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 황민호·홍선표, 『3.1운동 직후 무장투쟁과 외교 활동』(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