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Immigration History of Korean International Marriage Women in the United Stat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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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在美國際結婚女性移民歷史 |
영문 | Immigration History of Korean International Marriage Women in the United State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세계)/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미국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Immigration History of Korean International Marriage Women in the United Stat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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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지닌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미국으로 이주한 여성의 역사.
우리나라의 미주 이민 역사는 1902년 12월 22일 제물포항에서 한국인을 태운 갤릭호가 하와이로 떠나면서 시작되었다. 1903년에서 1905년 사이에 65척의 선박을 타고 7,226명이 하와이 호놀룰루로 건너갔다. 그 가운데 여성은 637명이었다. 여성은 하와이에 이민 간 인원에 10%도 미치지 못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남편을 따라 나섰다. 그러기에 80% 이상의 남성들은 독신이거나, 가족을 한국에 두고 단신으로 하와이에 갔다. 한국 여성 이민의 시작은 남편을 따라서 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여성의 이민은 대부분 결혼과 관련이 있었다.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던 대부분의 남성들은 65% 이상이 문맹이었고 영어도 모르는 상황에서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매우 낮은 임금에, 백인 등 외국인 감독의 횡포 또한 극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성들은 결혼도 못하고 노동력 착취를 당하니 노름과 아편 등에 빠져들기 쉬웠다. 또한 당시 미국 사회는 인종차별 때문에 동양인과 백인의 결혼이 금지되어 있었다. 미국 본토의 한인 남성들은 현지의 미혼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사진 신부 제도였다.
재미 국제결혼 여성 이민 역사는 사진 신부 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시작한 결혼 방법이 사진결혼이었다. 미국 본토와 하와이에 있는 남자가 본국에 있는 여성에게 사진을 보내며 선을 보인 후 사진을 보고 결혼하겠다고 한 여성을 데려다 결혼하는 것이 사진결혼이었다. 사진결혼 방법은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이민자 대부분에게 적용되었다. 사탕수수 재배 회사와 이민국도 적극 협조하였다. 그 결과 1910년부터 1924년 10월까지 하와이에 온 사진 신부가 951명, 미국 본토에 온 여성이 115명이었다. 1924년 「동양인배척법[Oriental Exclusion Act]」이 공포된 후에는 유학생 외에 아시아의 모든 이민이 중단됨에 따라 사진결혼은 종결되었다.
사진 신부는 대체로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일정한 교육을 받은 머리가 명석한 여성, 둘째 열성적인 기독교 집안의 독실한 여성 신자, 셋째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와 생활력이 강한 여성, 넷째 일찍 개화한 가정에서 민족의식과 더 많은 교육을 열망한 여성 등이 있다.
사진결혼 이후 재미 한인 국제결혼 여성 이민 역사는 6.25전쟁 이후에 시작되었다. 국제결혼은 한인 간[미국 영주권을 지닌 한국계 남성과 한국 여성]의 결혼이 아닌 말 그대로 미국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 간의 결혼이었다. 6.25전쟁과 이후의 사회불안 속에서 미군이 남한에 장기 주둔을 하였다. 남한에 주둔했던 미군이나 군속 남성과 한국인 여성 간의 결혼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이들은 결혼 초기 한국에서 살았지만, 미군 남성이 제대를 하거나 부대 배치를 다른 지역으로 받게 되면 한국을 떠났다. 대체로 본국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았고, 결혼한 한인 여성은 남편을 따라 미국에 입국하였다. 남편을 따라 미국에 입국한 한인들을 ‘한미 여성’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미국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 간의 결혼이 ‘국제결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1950년대는 연평균 약 200명쯤이었다. 대략 2,000여 명의 여성이 미군 남성과 결혼하면서 한국을 떠났다. 1960년대 들어오면 연 평균 1,200명, 1970년대에는 4,200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남편을 따라 미국에 입국한 한국인 여성들은 미국 생활에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 잘 적응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많이 나타났다.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그렇지 않든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인 여성들이 외로움에 봉착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은 자기 가족을 미국에 초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국제결혼을 통해 미국에 간 한인 여성이 가족을 초대해서 가족들마저 이민을 간 경우도 많이 있다.
근대 이후 국제사회의 이민은 못 사는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로 가는 경우가 많았고, 한인 여성들도 잘 사는 나라인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1900년대 초기에는 주로 사진결혼을 통해서 미국에 이민하여 삶을 일구며 가정을 꾸렸다. 6.25전쟁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는 미군 및 군속과의 결혼을 통해 미국으로 이민한 여성의 수가 많아지며, 미국 내 한인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