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유학생회

원어 항목명 Washington International Student Association
한자 -留學生會
영문 Washington International Student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세계)/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워싱턴 D.C.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5년
최초 설립지 미국 워싱턴 D.C.
원어 항목명 Washington International Student Association
성격 유학생 단체
정의

1955년 설립된 미국 워싱턴 D.C. 지역 유학생 단체.

설립 목적

워싱턴 유학생회는 미국 워싱턴 D.C.로 유학 온 한인 유학생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미국 워싱턴 D.C.는 광복 직후까지 미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유학생 수가 적었다. 그러다 주미국 대한민국 대사관이 들어서고, 한국의 지도자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워싱턴 D.C. 지역의 유학생 수는 차츰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955년 워싱턴 D.C. 지역의 유학생 수가 30명 정도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생회가 결성되었다. 박정수, 강희갑, 김정훈, 박종기, 윤영교 등이 발기를 했고, 초대 회장에 박정수, 부회장에 김정훈이 선출되었다.

학생회는 학생들 간의 친목을 목표로 하였는데 학생 수가 해마다 늘어났다. 일반 한인 모임인 한인회는 한인들의 수가 적어 활동이 점점 줄어드는 데 비해 학생회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학생회는 매해 연말에 파티를 열었는데, 학생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워싱턴 한인 사회 전체의 행사가 되었다. 워싱턴 유학생회는 점점 워싱턴 D.C. 지역 한인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활동을 하였다.

워싱턴 유학생회는 1960년대 초에 월간 『횃불』을 창간하였고, 회원들과 한인 사회 전체의 동정을 알려 주는 간행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워싱턴 D.C. 지역 한인과 학생들의 주소록도 함께 만들어 1980년대 한인회로 이관될 때까지 학생회에서 꾸준히 발간하였다. 『횃불』 발간 재원은 재외 국민 보조금의 명목으로 주미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지원했고, 학생회 유지비로도 사용되었다. 결국 워싱턴 유학생회는 대사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유학생들도 졸업 이후 한국에 돌아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정권에 협조적이었다.

1970년대 이민 바람이 불어 한인 사회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학생들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또한 워싱턴 D.C. 지역 대학에 이민한 한인의 자녀들이 진학하면서 대학생 사회도 변화하였다. 결국 유학생 주도의 학생회는 1986년 이후 명맥이 끊기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유학생 주소록 발간, 월간 회지 『횃불』 창간 및 발간, 유학생 야구팀 코리안 타이거스 창단 및 운영, 유학생들의 친목 도모 등과 관련된 활동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워싱턴 유학생회는 워싱턴 지역 한인회의 모태로서 1960년대까지 지역의 한인 사회를 대표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한인 이민 인구의 급증으로 한인 사회가 성장하면서 워싱턴 유학생회의 주요 활동들은 지역 한인회가 대신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채영창, 『워싱톤 한인사-1883~1993』(워싱톤 한인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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