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오밍 청년병학원

원어 항목명 Military School for Korean Young Man in Wyoming
한자 -靑年兵學院
영문 Military School for Korean Young Man in Wyomi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세계)/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와이오밍주 슈피리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0년 12월
최초 설립지 미국 와이오밍주 슈피리어
원어 항목명 Military School for Korean Young Man in Wyoming
성격 군사학교
정의

1910년 12월 미국 와이오밍주 슈피리어에서 설립된 한인 청년 군사학교.

개설

와이오밍 청년병학원은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전후로 미주 한인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무장 독립론에 입각하여 군대와 군대 지도자를 양성하려는 움직임 속에 설립된 한인 청년 군사학교이다. 일제의 한국 강점 소식을 전해 들은 미주 한인들은 북미 지역에서 ‘애국동맹단(愛國同盟團)’을 조직하고, 하와이 지역에서는 ‘대동공진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결의하였다. 애국동맹단대동공진단은 고종(高宗) 황제에게 강제 병탄의 거절을 요구하고, 일본의 왕에게는 강제 병탄의 취소를 촉구하였다. 또한 독립전쟁 준비를 위한 사관생도의 양성을 결정하고, 「무예장려문」을 발표하여 미주 한인들의 무예 정신도 고취하였다. 『체조요지』를 출판하여 한인 청년들의 군사훈련도 시작하였다.

와이오밍 청년병학원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10년 12월 와이오밍(Wyoming)주 슈피리어(Superior) 지역에 설립되어 매일 저녁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군인 양성을 시도하였다. 미주 한인들은 미국 땅에서 군 지휘관을 육성해 독립전쟁에 기여하기를 기대하였다. 미일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이 패전하여 한국의 독립이 가능할 것으로 믿고 군사학교 설립에 공을 쏟았고, 미국 본토와 하와이에 거주하던 500여 명의 대한제국 군인 출신들이 힘을 보탰다. 당시 미주 지역에 세워진 군사학교에는 대한제국 출신 군인과 미국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한인들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청년병학원이 언제까지 운영되었는지, 훈련지는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

설립 목적

와이오밍 청년병학원은 한국의 독립전쟁에 참전할 사관생도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참고문헌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양태석, 「제1차 세계대전과 미주 한인 사회-『신한민보』를 중심으로」(『군사연구』127, 육군군사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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