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Conference of Weak Nations' Allia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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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小弱屬國同盟會議 |
영문 | Conference of Weak Nations' Allianc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세계)/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미국 뉴욕주 뉴욕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7년 10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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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8년 12월 14일 |
종결 시기/일시 | 1917년 10월 31일 |
종결 시기/일시 | 1917년 12월 15일 |
발생|시작 장소 | 미국 뉴욕주 뉴욕시 |
원어 항목명 | Conference of Weak Nations' Alliance |
성격 | 국제회의 |
관련 인물/단체 | 박용만|정한경|민찬호 |
1917년과 1918년 2회에 걸쳐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세계 약소민족 대회.
소약속국동맹회의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즈음 토머스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미국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와 종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아 두 번에 걸쳐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회의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24~25개의 약소민족 대표들이 참가했고, 미국 거주 한인들도 두 번의 회의에 모두 참가해 활동하였다.
1917년 4월 미국은 자유와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명분으로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언했고, 1918년 1월에는 윌슨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통해 ‘민족자결 원칙’을 포함한 14개조의 강화 조건을 제시하였다. 당시 미주 한인들은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의 독립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들에게 미칠 경제적인 영향에 더 관심을 두었고, 한국의 독립을 위한 대외 활동에는 비교적 소극적이었다.
제1차 소약속국동맹회의는 1917년 10월 29일부터 10월 31일까지 뉴욕에서 개최되었다. 한인 대표로는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에서 파견한 박용만(朴容萬)이 참가하였다. 박용만은 각국의 대회 참가자들에게 한국이 처한 사항을 동정하고 한국의 독립을 지지해 달라고 연설하였다. 대회 참가 이후 박용만은 독립을 위해서는 무장 활동과 함께 외교 활동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제2차 소약속국동맹회의는 1918년 12월 14일부터 12월 15일까지 뉴욕에서 개최되었다. 한인 대표로는 곧 개최될 파리강화회의에 초청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여 정한경(鄭翰景)과 민찬호(閔贊鎬)가 참가하였다. 활동 성과는 1차 회의에 참가한 박용만의 활동 성과에 비해 두드러지지는 못하였다. 당시 뉴욕 한인들이 결성한 신한회의 독립청원 활동이 더 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소약속국동맹회의는 한국을 비롯한 약소국 민족들에게는 이상적인 국제회의였다. 그러나 약소국 중 승전국의 식민지하에 있던 한국의 독립 주장은 승전국 간의 화합과 협력이 강조되던 당시 국제사회 분위기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하였다. 소약속국동맹회의에 대한 미국 사회 내 인식은 비판적인 흐름이 주를 이루었지만, 미주 한인들에게는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한국 독립 문제에 대응하고 준비하는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