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

원어 항목명 The Korean Student Federation of North America
한자 北美大韓人留學生總會
영문 The Korean Student Federation of North America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세계)/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워싱턴 D.C.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0년 8월
개칭 시기/일시 1923년 6월
원어 항목명 The Korean Student Federation of North America
성격 유학생 단체
설립자 김현구|노정일|변성옥|김배혁|조영한|송창균|곽림대 등
정의

1920년대에 미주 한인 유학생들이 조직한 학생회 연합회.

개설

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는 1910년대에 비해 1920년대 들어 수가 급증한 미주 한인 유학생들이 상호 친목 도모와 함께 조국의 소식을 공유하고자 조직한 학생회 연합회이다. 1920년대에 미주에서 한인 유학생 수가 급증한 이유는 3.1운동 이후의 교육열 고조와 함께 조선총독부가 해외 유학을 억제하던 종래의 유학 정책을 폐지했기 때문이었다. 1920년대의 미국 유학생들은 조선총독부의 정식 허가를 받아 여행권을 가지고 온 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었고, 체계적인 유학 준비를 통해 국내나 일본에서 전문학교나 대학을 마친 뒤 도미하여 대학이나 대학 예비과에 입학하였다.

1920년대 미주 한인 유학생계는 유학생 수의 급증과 함께 판도 변화도 일어났다. 시카고대학교와 노스웨스턴대학교 등이 있는 일리노이주와 컬럼비아대학교와 뉴욕대학교 등이 있는 뉴욕주가 유학생들이 주로 모이는 새로운 거점이 되었다. 유학하는 대학생 수가 늘어나며 이들을 중심으로 북미 한인 유학생 사회가 재편됨에 따라, 교민 사회와 유학생 사회의 분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설립 목적

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는 미주 한인 유학생들이 국내외 시사 문제와 현안 문제들을 공유하며 의식을 계발하고, 상호 친목 도모와 함께 단합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1919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학생대회가 열렸다. 1920년 6월 김현구(金鉉九)를 임시 회장으로, 노정일(盧正一), 변성옥, 김배혁(金培赫), 조영한, 송창균(宋昌均), 곽림대를 준비 위원으로 하여 조직 설립에 박차를 가했고, 8월 북미 대한인유학생회의 헌장 기초안을 마련하였다. 이후 1923년 5월 15일에 연락의 중심지이자 학생들 간의 왕래가 편리한 곳으로 여겨진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본부를 이전했고, 당시 회장은 염광섭(廉光燮), 부회장은 황창하(黃昌夏)였다. 이어 1923년 6월 북미 대한인유학생회가 시카고에서 제1회 북미 대한인유학생대회를 소집하여, 북미 대한인유학생회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The Korean Student Federation of North America]로 강화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는 산하에 지방 한인 학생회들을 두었으며, 매년 6월 유학생 대회를 개최하고 국한문 기관지 『우라끼[The Rocky]』를 발행하면서 유학생계의 정신적 단결과 사업의 통일을 기하였다. 주요 사업은 친목, 단합, 출판, 학생 지도, 국가를 위한 활동 등이었다. 워싱턴 D.C.에 본부를 두었을 당시의 초기 활동은 1919년 5월 결성된 한국친우회 등과 연계하여 한국의 사정을 미국인들에게 알리는 홍보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 1923년 시카고로 본부를 이전한 후로는 기관지 발행과 학생 응급 대여 기본금 설치 같은 유학생 자체 사업의 비중이 높아졌다.

의의와 평가

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는 1920년대에 미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재편된 북미 한인 유학의 대표기관으로서 유학생 운동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다.

참고문헌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홍선표, 「일제하 미국 유학 연구」(『국사관논총』96, 국사편찬위원회, 2001)
  • 장규식, 「1900~1920년대 북미 한인 유학생 사회와 도산 안창호」(『한국근현대사연구』46, 한국근현대사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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