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Group of Overseas Koreans in New Yo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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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人僑民團 |
영문 | Group of Overseas Koreans in New Yor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세계)/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뉴욕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4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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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미국 뉴욕주 |
원어 항목명 | Group of Overseas Koreans in New York |
성격 | 독립운동 단체 |
1924년 미국 뉴욕에서 결성된 독립운동 후원 단체.
뉴욕 한인교민단은 1924년 12월 10일 미국 뉴욕에서 결성되어 이승만(李承晩)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를 지지하는 활동 등을 전개한 한국 독립운동 후원 단체이다.
1920년 10월 7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내무부령 제4호 총 25개조의 「임시교민단제」를 공포하였다. 「임시교민단제」 제1조에 “외국에 교거(僑居)하는 민국(民國) 인민(人民)의 청원(請援) 우(又) 상태(狀態)에 의(依)하여 내무총장이 광복 사업에 필요로 인(認)할 시(時)는 일정한 구역 내에 교거하는 민국 인민으로 조직하는 교민단을 치(置)함”이라고 하였다. 임시정부의 명령에 따라, 미주 지역에서도 교민단이 설립되었다.
1921년 3월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는 「임시교민단제」에 의거하여, ‘대한인하와이 교민단’으로 개편되었다. 1924년 9월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전진, 안상학(安相學), 정수만, 이병억(李秉億), 김순권(金順權) 등의 발기로 나성 한인교민단이 조직되었고, 같은 해 12월 10일 뉴욕에서는 안정수(安鼎洙), 홍득수(洪得秀), 이봉수(李奉洙), 송세인, 신성구, 허정(許政), 이진일(李進日) 등의 발기로 뉴욕 한인교민단이 설립되었다.
1925년 3월 임시정부가 당시 임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을 면직하고 구미위원부 폐지령을 반포하였다. 뉴욕 한인교민단은 임시정부 폐지령에 대한 ‘성토문’을 발표하며, 임시정부의 조처가 위헌이며 비법이고 망동이라고 비난하였다. 성토문에서는 한성정부의 계통을 이어 독립운동을 진행할 것이며, 구미위원부를 유지하며 외교 선전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하였다. 1928년 6월 뉴욕 한인교민단에서는 기관지로 『삼일신보(三一申報)』를 발행하였다.
뉴욕 한인교민단은 1925년에 임시정부와 이승만이 대립하자 임시정부를 비난하며 이승만과 구미위원부의 활동을 후원하고 지지하였다. 1926년에는 대한인국민회 뉴욕지방회와 연합하여 한인기독교회에서 89명의 한인들이 참석한 성대한 3.1절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기념식은 뉴욕 한인교민단 부회장 홍득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1929년 임시정부에 인구세를 내겠다고 선언했으며, 1933년 6월 18일에 뉴욕의 국민회·동지회와 연합하여 한국대일전선동맹 뉴욕지부를 설치하고, 중한민중대동맹 뉴욕지부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1935년에는 뉴욕의 한인들이 공동으로 3.1절 기념식을 주최하기 위한 공동회 발기회를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