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인공동회

원어 항목명 Collaborative Association of Korean Residents in New York
한자 -韓人共同會
영문 Collaborative Association of Korean Residents in New Yor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세계)/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뉴욕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0년 1월
최초 설립지 미국 뉴욕주
원어 항목명 Collaborative Association of Korean Residents in New York
성격 독립운동 단체
정의

1930년 1월 미국 뉴욕에서 결성된 독립운동 단체.

개설

뉴욕 한인공동회는 1929년에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을 후원하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리기 위해 1930년에 뉴욕에서 결성된 한인 단체이다. 1929년 11월 전라남도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전국적인 학생운동으로 발전하며 대대적인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미주에서는 ‘제2차 독립운동’ 혹은 ‘제2차 혁명운동’이라고 하면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한 후원을 목적으로 한인공동회가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1930년 1월 27일에 결성된 뉴욕 한인공동회를 시작으로, 2월 3일 시카고 한인공동회, 2월 9일 로스앤젤레스 한인공동회, 3월 8일 중가주 한인공동회 등이 결성되었다.

이어 1930년 3월 이들 한인공동회들은 여러 지역 한인공동회의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공동보조를 취하자는 뉴욕 한인공동회의 제의를 받아들여 연합을 꾀하였다. 그 결과 뉴욕 한인교회에 한인공동회 중앙위원회를 설치하고, 허정(許楨)을 위원장, 오천석(吳天錫)을 서기로 선임하였다. 한인공동회 중앙위원회는 『코리아 머스트 비 프리(Korea Must Be Free)』라는 영문 책자를 1만여 권 발간하여 미국 상하 양원 의원 등의 중요 인사들과 세계 각국에 보냈다.

그리고 학생회를 도와 학생 영문보를 출판하여 미국의 중요 인물과 신문사 및 잡지사에 배포하였다. 미국 언론과 접촉하여 국내 학생들의 항일운동도 적극적으로 알렸고, 통신부를 설치하여 학생운동 및 국내 사정도 설명하도록 하였다. 한인공동회 중앙위원회는 1932년에 들어 신년도 사업을 발표했다가, 인물난과 재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고 공포하였다. 이후 한인공동회 중앙위원회의 연합 활동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설립 목적

뉴욕 한인공동회는 1929년 국내에서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한 후원과 함께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뉴욕 한인공동회는 한인공동회 중앙위원회를 통해 뉴욕 국민회, 뉴욕 한인교민단, 동지회, 북미 한인학생연합회 등과의 공동 명의로 1930년 3월 18일 『코리아 머스트 비 프리』라는 영문 책자를 발간하여 미국 각지에 배포하며 한국 독립운동을 알렸다.

의의와 평가

뉴욕 한인공동회의 주도로 결성된 한인공동회 중앙위원회는 1932년 이후로 조직과 운영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뉴욕 한인 사회의 활동도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교민단 등의 개별 조직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7(원호처, 1973)
  • 홍선표, 『재미 한인의 꿈과 도전』(연세대학교 출판부, 2011)
  • 「시카고와 나성에서 공동회를 발기 내지학생운동을일치 응원코자」(『신한민보』, 1930. 2. 6.)
  • 「공동회 중앙위원회 사업에 관하여 해외 동포 제위에게 고함」(『신한민보』, 1931.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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