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6.3 Academic Socie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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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六三學會 |
영문 | 6.3 Academic Society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세계)/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뉴욕주 |
시대 | 현대/현대 |
설립 시기/일시 | 196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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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미국 뉴욕주 |
원어 항목명 | 6.3 Academic Society |
성격 | 한인 단체|학술 단체 |
설립자 | 백선기|노재봉|어윤배|김일평 등 |
1963년 미국 뉴욕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학회.
6.3학회는 미국 동부 지역의 한국 유학생들이 이승만 독재정치, 4.19혁명, 5.16군사정변, 한일협정 추진 등으로 인한 조국의 사회 혼란을 해소하고 발전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설립한 뉴욕 지역 최초의 한인 학회이다.
1958년 이승만(李承晩) 정권은 진보당의 조봉암(曺奉巖)을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이후 「국가보안법」의 개정을 시도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임명 관련 법을 개정하는 등 야당과 언론을 규제하며 영구 집권 체제를 모색하였다. 이에 김일평 등의 유학생들은 모국의 이런 뉴스를 접하고 뉴욕 지역을 중심으로 “이승만 독재정권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를 벌였다. 유학생회의 일부 회원들은 이승만의 독재정치에 대한 반발로 ‘민우회’라는 학생 서클을 만들어 매주 1회씩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 장소는 뉴욕 한인교회나 학생들의 아파트였고, 토론 주제는 세계정세, 학생들의 당면 문제, 자유당 독재정권 성토 등이 주를 이루었다.
민우회의 핵심 멤버인 백선기는, 가끔씩 『뉴욕타임스』 등에 한국의 독재정권을 규탄하는 논조의 서신을 띄우기도 하였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될 당시, 민우회 회원들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Empire State Building)에 있던 유엔 한국대표부에 몰려가 4.19혁명 당시 한국 학생들의 희생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후 토론 그룹 형태로 소수로 운영되던 민우회가 뉴욕의 유학생 및 소수 지식인 인사들의 참여로 30여 명 규모로 확대되고, 1963년 광복절에 ‘8.15의 의의’라는 명제 아래 ‘우리 민족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주제의 문제 제기를 하면서 국가와 민족 발전의 해법을 찾기 위해 6.3학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6.3학회는 회원들이 매달 한 번씩 돌아가며 학술 논문을 발표하고 열띤 토론을 하거나, 특정 주제 없이 모임을 갖고 토론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6.3학회의 회원이자 뉴욕 한인유학생회 회장이기도 했던 백선기의 주도로 한국으로 도서 보내기 운동도 하였다. 그러나 6.3학회의 활동은 회원 다수가 박사과정을 수료하거나 박사학위 취득 후에 귀국하게 되면서 급격하게 위축되며 단기간에 종료되었다. 귀국한 회원들은 학계와 관계를 비롯한 사회 여러 분야에서 종사하며 활동하였다. 1987년 3월에는 6.3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다 귀환한 회원들이 『한국사회의 제문제』라는 동인지를 창간하고 창간호를 백선기 회장에게 헌정하는 헌정식을 거행했었다.
6.3학회는 창립 멤버들이 주로 뉴욕의 한인 유학생과 지식인들이었다. 귀국 후 무역 회사인 두원산업을 운영했던 백선기를 비롯하여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및 1991년 노태우(盧泰愚) 정부에서 제22대 국무총리를 지낸 노재봉(盧在鳳), 숭실대학교 총장을 지낸 어윤배,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신행, 한양대학교 교수를 지낸 유세희,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낸 차인석, 뉴욕시립대학교 교수 김일평, 뉴욕의 변호사 김영근, 그리고 김주봉, 김정원, 김상중, 홍원택, 김경원, 이형, 차대응, 손창문 등 30여 명이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회원들 중 다수가 유학생인 관계로 수학 후에 한국으로 귀국한 회원이 많았다. 김일평, 김영근, 손창문 등은 미국 동부 지역에 정착했지만, 김경원, 유세희, 김신행, 김병국, 김상중, 백선기, 이형 등이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학회의 활동은 종료되었다.
6.3학회는 회원 중 다수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관계로 활동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모국으로 귀환한 회원 대부분은 정부, 대학교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며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