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원어 항목명 Los Angeles Koreatown
영문 Los Angeles Koreatow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세계)/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2003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2년
현 소재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원어 항목명 Los Angeles Koreatown
성격 한인타운
면적 7㎢
인구[남/여] 114,832명[2019년 기준]
정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안 도시인 로스앤젤레스시의 올림픽 블러바드윌셔 블러바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 집거지.

개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올림픽 블러바드(Olympic Boulevard)윌셔 블러바드(Whilshire Boulevard)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 최대의 한인 집거지다. 1965년 「이민 및 민족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of 1965] 개정안 발효 이후 한인들의 이민이 급증하면서 올림픽 블러바드를 중심으로 한인타운이 형성되었으나,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이후 소매업 중심의 올림픽 블러바드 일대 대형 빌딩과 고급 주거지를 중심으로 기능적 분화가 발생하였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은 한인들의 교외 이주 등으로 인종적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으나 여전히 미국 최대의 한인타운으로 미국 내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명칭 유래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이라는 명칭은 로스앤젤레스시의 올림픽 블러바드를 중심으로 한인 집거지가 형성되면서 이 지역을 한인타운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데서 유래하였다. 1981년 8월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한인타운의 경계구역을 지정한 뒤 1982년 올림픽 블러바드 선상에 ‘코리아타운’ 표지판이 공식적으로 설치되었다. 이후 2003년 윌셔 코리아타운 주민의회가 설치되면서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공식 구획이 획정되었다.

형성 및 변천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형성 및 변천 과정은 크게 벙커 힐(Bunker Hill) 시기, 올림픽 블러바드 시기, 윌셔 블러바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로스앤젤레스에 한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이주했던 한인 일부가 미국 본토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는 한인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로스앤젤레스의 리틀 도쿄와 차이나타운 인근에 한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였다. 이후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1878~1938]의 가족이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중심부에 있는 벙커 힐 지역으로 이주해 오면서 650여 명의 한인이 안창호 가족이 거주하던 집을 중심에 두고 교회와 식당, 청과물점 등을 운영하며 한인 집거지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1948년 유색인종에 대한 주거 및 토지 사용 제한 조치[Racially Restrictive Covenants]가 불법이 아니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1948 Shelley v. Kraemer Supreme Court Case]에 따라 백인, 유대인, 일본인 거주자와 사업가들이 더 나은 주거지를 찾아 떠나면서 일종의 공백 지역이 된 올림픽 블러바드 북쪽을 중심으로 한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한동안 정체 상태에 놓였던 로스앤젤레스에 한인 인구가 급증하고 현재와 유사한 형태의 한인타운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계기는 1965년 이민자들의 출신 국가별 쿼터 규정을 완화하는 「이민 및 민족법」 개정안이 발효되어 계층 상승이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중산층 고학력 출신 한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1971년 서독에서 광부로 일했던 이희덕이 웨스트 올림픽 블러바드 3122번가에 올림픽 마켓을 매입해 개점하면서 계층 상승이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미국에 이주한 한인들이 올림픽 블러바드 일대로 모이게 되었고, 그 결과 1970년대 후반에는 올림픽 블러바드를 중심으로 피코 블러바드(Pico Boulevard), 베벌리 블러바드(Beverly Boulevard)와 버몬트 애비뉴(Vermont Avenue), 웨스턴 애비뉴(Western Avenue)를 잇는 지역 전체가 한인 상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1980년대는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한인타운의 공간적 범위가 주변 지역으로까지 확장하던 시기이자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이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 받은 시기였다. 1982년 로스앤젤레스카운티에서는 올림픽 블러바드 선상에 ‘코리아타운’ 표지판을 공식적으로 설치하였으며, 1980년대 중반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범위는 동서로는 크렌쇼 블러바드(Crenshaw Boulevard)와 버몬트 애비뉴, 남북으로는 올림픽 블러바드윌셔 블러바드를 잇는 지역까지 확장되었다. 이 시기에는 한국뿐 아니라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에서 2차 이주를 단행한 한인들이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으로 모여들면서 인구가 급증했고, 한인 건설업체와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아파트와 사무실, 대형 빌딩을 건설하였다.

1980년대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던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일어나면서 큰 위기를 맞이한다. 1992년 로드니 킹 폭행 사건에 관련된 경찰관 4명에 대해 무죄 혹은 재심사 판결이 나면서 판결에 분노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시위가 방화, 약탈, 총격전으로 이어지면서 시위 현장 인근에 있던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이 폭력에 노출되었다. 그 결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일대 한인 점포 2,300여 곳이 방화나 약탈로 파괴되었으며, 한인 사회 전체로는 최소 3억 5000만 달러의 재산 손실을 입었다. 이 때문에 많은 한인이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을 떠나 인근 가데나(Gardena)와 토런스(Torrance), 오렌지카운티 일대로 이동하기도 했으나, 1990년대 미국의 경제 호황과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 중산층과 상류층의 투자 자금이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으로 유입되면서 한인타운의 범위는 윌셔 블러바드의 미드 윌셔 지역까지 확장되었다. 그 결과 1992년 이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은 소매점을 중심으로 하는 올림픽 블러바드 일대와 대형 빌딩과 고급 주거지가 중심을 이루는 윌셔 블러바드로 기능적 분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교외 지역으로 이주하고 다양한 국적의 이주자들이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유입되면서 한인타운의 명칭과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였다. 방글라데시계 주민들이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내 3번가와 버몬트 애비뉴, 노르망데일 애비뉴 사이에 자리 잡으면서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내 방글라데시인의 수가 증가했고, 2009년 방글라데시계 주민들이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면적의 절반 정도를 리틀 방글라데시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로스앤젤레스시 당국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2018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일부를 리틀 방글라데시로 지정하는 안건이 98.5%의 반대로 부결되면서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은 기존에 지정된 한인타운의 범위를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이 있는 로스앤젤레스시는 태평양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지형적으로 보면 로스앤젤레스시는 산지가 둘러싸고 있는 분지 지역에 자리하며, 기후적으로는 아열대-지중해성 기후에 속해 있어 1년 내내 햇볕이 강렬하고 습기가 적은 기후가 나타난다. 로스앤젤레스시는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좋은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으나, 강수량이 적어 가뭄과 산불을 비롯한 재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분지라는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스모그와 지표 오존 밀도의 증가와 같은 대기오염이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현황

2019년 기준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는 총 11만 4832명이 거주하고 있다. 거주 인구의 인종 및 민족별 분포를 보면 히스패닉 인구가 52.3%로 가장 높게 나타나며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인 인구가 33.4%, 백인이 8.6%, 흑인이 3.7% 순이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은 많은 한인이 자녀 교육, 주거 환경 등을 이유로 교외로 이주하고 히스패닉계 인구 비중이 증가하면서 경관이나 인구 구성 측면에서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나, 여전히 미국 최대 한인 집거지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윌셔 블러바드를 중심으로 주상복합건물 건설 및 재개발 프로젝트가 활발히 수행되고 있으며, 케이팝(K-pop)을 비롯한 한국 문화가 미국 현지에서 인기를 끌면서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참고문헌
  • 류연택 외, 『세계의 도시와 건축』(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21)
  • Nacncy Abelmann 외, 『Blue Dreams: Korean Americans and the Los Angeles Riots』(Havard University Press, 1997)
  • 박경환·이영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다시 생각하기: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다중스케일적 지리적 변동(Rethinking Los Angeles Koreatown: Multi-scaled Geographic Transition since the Mid-1990s)」(『대한지리학회지』42-2, 대한지리학회, 2007)
  • 김백영, 「소수민족 혼성 거주지에서 초국적 개발주의의 거점지로: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변천사에 대한 공간사회학적 연구」(『사회와역사』120, 한국사회사학회, 2018)
  • Eui-Young Yu, 「“KOREATOWN” LOS ANGELES: EMERGENCE OF A NEW INNER-CITY ETHNIC COMMUNITY」(『Bulletin of the Population and Development Studies Center』14,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and Policy Research, 1985)
  • Eui-Young Yu 외, 「Emerging diversity, Los Angeles' Koreatown 1990-2000」(『Amerasia Journal』30-1, The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2004)
  • Keyyoung Park·Jessica Kim, 「The Contested Nexus of Los Angeles Koreatown: Capital Restructuring, Gentrification, and Displacement」(『Amerasia Journal』34-3, The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2008)
  • 「LA 코리아타운(세계속 한인촌 탐방:1)」(『서울신문』, 1995. 11. 22.)
  • 「LA 한인타운 분리안 투표 부결…반대 98.5%로 한인 결집력 과시」(『연합뉴스』, 2018. 6. 22.)
  • 「여전한 타운 아파트 붐…연내 최소 2000유닛」(『로스앤젤레스 중앙일보』, 2021. 2. 9.)
  • 주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 총영사관(https://overseas.mofa.go.kr/us-losangeles-ko/index.do)
  • Census Reporter(https://censusreporter.org/profiles/79500US0603733-los-angeles-county-central-la-city-centralkoreatown-puma-ca)
  • Justia(https://supreme.justia.com/cases/federal/us/334/1)
  • Los Angeles Times(http://maps.latimes.com/neighborhoods/neighborhood/korea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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