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한인타운

원어 항목명 Chicago Koreatown
영문 Chicago Koreatow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세계)/개념 용어(일반)
지역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현 소재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원어 항목명 Chicago Koreatown
정의

1970년대 이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지역에 형성된 한인 집중 거주지 및 상업 지역.

개설

시카고 지역에는 쿡(Cook)카운티와 클라크(Clark), 로렌스(Lawrence), 글렌뷰(Glenview) 지역에 한인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한인 사회의 형성

공식 통계에 따르면 1910년까지 시카고 지역에 거주했던 한인은 없었다. 그러나 1920년 인구 조사에서는 약 30명의 한인이 시카고에 거주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시카고 한인 대다수는 유학생이나 하와이 농장 이민을 거쳐 시카고에 재정착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1913년 설립된 흥사단 시카고지부가 시카고 최초의 한인 조직이며, 1918년에는 친목 및 학술 지식 교환을 목적으로 한인감리교회 산하 조직으로 한인학생회가 설립되었다. 1930년에는 일리노이주 전체에서 한인이 80명 이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인은 주로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주방장, 요리사,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였다. 이들은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한인 교회는 취직 및 정보 공유의 구심점으로서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1940~1950년대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란 지정학적 문제 때문에 시카고 한인 사회는 침체된 모습을 보였다. 유학생의 유입이 멈춘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가족을 동반한 한인들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당시 시카고 거주 한인의 대부분은 영주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신분상의 문제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민국 수사관들의 불심검문이 잦았기 때문이다.

한인단체

1960년대를 지나며 시카고 한인학생회는 독립적인 단체로 발전하며 시카고 한인회로 성장하였다. 한인 사회의 성장에는 1965년 개정된 「이민 및 민족법」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1960년대 시카고 한인 수는 약 290명에 불과했지만, 「이민 및 민족법」 개정 이후인 1970년에는 약 1,600명 수준으로 급증하였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에 한국 정부가 유학에 대해 개방적 입장을 취하면서 이민자보다 많은 수의 유학생이 유입되었다. 한국에서 의사나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직 종사자들은 시카고에서도 그 자격을 인정받아 고용 이주에 유리하였다. 아울러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일부가 시카고로 이주하면서 시카고의 한인 사회는 빠르게 성장하였다. 당시 한인 사회의 중심이 되는 한인 교회의 수도 급증하였다. 1960년대 한인 사회의 특징은 유학생은 캠퍼스 주변에, 의료 전문인은 병원 주변에, 그 외 이민자들은 임대료가 저렴한 아파트 단지에 주로 분포하면서 한인의 주거지가 분산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인타운의 성장

시카고에서는 1970년대 이후부터 한인타운의 성장이 본격화되었다. 당시 한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대부분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월세가 저렴한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시카고를 남북으로 통하면서 다운타운 방향의 대중교통이 발달한 클라크 스트리트(Clark Street)가 초창기 한인타운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한국음식점을 중심으로 한인 사업체들이 클라크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집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보다 외곽 지역으로 이동하는 한인들이 늘어갔다. 특히 접근성이 좋고 유대인 사업체들의 이전으로 임대료가 저렴해진 올버니 파크(Albany Park) 지역의 로렌스 애비뉴(Lawrence Avenue)에 한인들이 몰려들었다. 클라크의 한인 업체들이 로렌스로 이동하면서 한인타운의 중심지도 자연스럽게 로렌스로 옮겨 갔다.

주요 한인타운

시카고 지역에서 최초로 형성된 로렌스 한인타운은 킴벌(Kimball)과 케지(Kedzie) 사이에 있는 세 블록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1970~1980년대 많은 수의 한인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펄래스키(Pulaski)와 시카고 강 사이에 이르는 열 블록 규모로 확대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기존 로렌스 한인타운 북부 브린 모어(Bryn Mawr)의 세 블록이 추가되는 공간적 확장도 이루어졌다. 로렌스 한인타운의 규모 확대는 한인 점포 수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이곳의 한인 사업체는 1976년 약 100개에서 1989년 290개 정도로 3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로렌스 애비뉴의 일부가 서울 드라이브(Seoul Drive)로 명명되고 이곳이 ‘한인타운’으로 지정되면서 한인 기반의 장소성이 공고해지기도 하였다.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한인의 교외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예전보다 경제적 윤택함을 누리는 중산층 한인의 삶의 양식에서 자동차 보유와 교외 주택 소유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군이 비교적 양호한 글렌뷰와 노스브룩(Northbrook), 체임버즈버그(Chambersburg), 마운트 프로스펙트(Mount Prospect) 등으로 옮겨 갔다. 시카고 한인의 교외화가 진행되면서 북부 교외 지역에 있는 글렌뷰는 남쪽으로 인접한 나일스 빌리지(Niles Village)와 함께 제2의 한인타운으로 불리게 되었다. 글렌뷰와 나일스에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마트, 식당, 상점, 병원 등의 편의시설이 집적하면서 시카고와 중서부 한인의 새로운 상업과 교류의 중심지로 등장한 것이다.

참고문헌
  • 『북미주 한인의 역사』상(국사편찬위원회, 2007)
  • 시카고 한인사 출판위원회, 『시카고 한인 이민사』(코람데오, 2012)
  • 윤인진 외, 『세계의 코리아 타운과 한인 커뮤니티』(북코리아, 2019)
  • 「한인이민 100주년기념 이민사 발굴 시리즈」(『재외동포신문』, 2004. 10. 23.)
  • 「시카고 로렌조, 카자흐 바스토베 한인타운 점차 역사 속으로」(『월드코리안뉴스』, 2013. 11. 22.)
  • 주시카고 대한민국 총영사관(https://overseas.mofa.go.kr/us-chicago-ko/index.do)
  • United States Census Bureau(https://data.census.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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