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Long Island Koreat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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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Long Island Koreatow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세계)/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
시대 | 현대/현대 |
현 소재지 |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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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Long Island Koreatown |
성격 | 한인타운 |
1960년대부터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형성된 한인 집중 주거지 및 상업지구.
미국의 뉴욕 일대로 이민한 초창기 한인들은 대부분 퀸스(Queens)나 브루클린(Brooklyn) 지역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 이전의 뉴욕 일대 한인은 주로 유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은 주로 맨해튼(Manhattan)을 중심으로 생활하였다. 1965년 미국 「이민 및 민족법」의 개정으로 문호가 개방되면서 한인들의 미국 이민이 본격화되었으며,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뉴욕 일대로 이민 온 한인 중에는 학생들과 함께 간호사와 의사를 포함한 의료직 전문인이 특히 많았다.
이러한 당시의 신규 이민자들은 뉴욕의 다섯 개 보로 중에서도 특히 퀸스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나머지 네 개의 보로와 비교했을 때 퀸스 지역은 한인 이민자들이 선호할 만한 환경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퀸스는 뉴욕의 다운타운과 접근성이 좋고, 주거비와 생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학군이 좋아 중산층 한인이 선호하는 거주지였다.
퀸스보로에서도 한인들은 특히 플러싱(Flushing) 지역을 선호하였다. 플러싱은 1980년대까지 백인 중산층의 거주지 역할을 하였지만, 이들이 롱아일랜드에 있는 신흥 교외 지역으로 더욱 멀리 퍼져 나가며 공백이 생겼다. 그리고 이곳은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계승되었다. 플러싱 지구 전체 인구의 65%를 아시아계 인구가 차지하고 있다. 플러싱 다음으로 한인이 많이 사는 곳은 베이사이드(Bayside) 지역이다. 플러싱 지구와 베이사이드 지역을 연결하는 노던 블러바드(Northern Boulevard)를 따라 한인 상업 지역이 조성되었으며, 이 상업 지역을 중심으로 남과 북에 많은 한인이 거주한다.
플러싱과 베이사이드 상업 지역은 1970년대 말부터 플러싱의 메인스트리트(Main Street)에 형성된 후, 그 중심이 유니온 스트리트(Union Street)를 포함한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1990년대 말부터 중국 이민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플러싱의 중심가를 잠식해 버린 이유도 있다. 이런 변화 속에 한인 상점들은 유니온 스트리트에서 베이사이드 226번가까지 노던 블러바드를 따라 양쪽에 자리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면 형태의 모습은 사라지고 2000년대 이후 플러싱-베이사이드 한인타운은 선 모양을 띠게 되었다.
2019년 기준 뉴욕주의 인구는 1945만 4000명 정도이고, 이 중 한국인은 약 12만 2000명이다. 뉴욕/뉴저지 대도시권 지역은 로스앤젤레스 메트로폴리탄에 이어 한인들이 두 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권역이다. 한인타운이 자리한 뉴욕주 퀸스카운티의 인구는 약 225만 4000명인데, 한국인은 4만 5000명 정도로 퀸스카운티 인구의 2%가량을 차지한다.
롱아일랜드 지역에서 한인들은 퀸스카운티의 플러싱, 베이사이드 지역, 나소카운티의 예리코(Jericho), 시오셋(Syosset), 코맥(Commack)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중 가장 큰 규모의 한인타운은 플러싱과 베이사이드 지역에 있다.
2000년대 초반 플러싱, 베이사이드 지역에는 900여 개의 한인 사업체가 입지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이곳의 주요 업종은 부동산업[178개], 의료업[175개], 회계사 및 변호사와 같은 전문적 서비스업[95개] 순이었다. 그밖에도 식당, 식료품점, 주점, 미용실, 비디오 대여점, 여행사, 보험업 등도 많이 있다. 그러나 급증하는 중국인에게 밀려 한인 사업체의 수는 최근 들어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뉴욕과 롱아일랜드 일대에 정착한 초기 한인은 언어 장벽이 낮고 한인 상권이 발달한 플러싱 지역을 선호하였지만, 영어를 습득하고 현지 문화에 적응해 가면서 한인들은 양호한 학군과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롱아일랜드나 뉴저지의 원거리 교외 지역을 보다 선호하게 되었다. 차이나타운의 형성이 확연해지기 시작했던 시기부터 플러싱, 베이사이드 지역의 한인 다수는 나소카운티의 예리코, 시오셋, 코맥 등으로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