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Washington D.C. and Northern Virginia Metropolitan Area Koreat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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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Washington D.C. and Northern Virginia Metropolitan Area Koreatow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세계)/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미국 워싱턴 D.C.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Washington D.C. and Northern Virginia Metropolitan Area Koreat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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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워싱턴 D.C.와 북버지니아, 메릴랜드주 일대에 형성된 한인 집중 거주지 및 상업지구.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은 ‘워싱턴-볼티모어 메트로폴리탄(Washington-Baltimore Metropolitan)’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수도인 워싱턴 D.C.와 버지니아주 페어팩스(Fairfax)카운티,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프린스윌리엄(Prince William)카운티, 메릴랜드주의 몽고메리(Montgomery)카운티와 프린스조지스(Prince George's)카운티 등을 포함하는 권역을 의미한다.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은 워싱턴 D.C.를 둘러싼 495번 도로인 캐피털 벨트웨이 이너 루프(Capital Beltway Inner Loop)와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북동-남서 교외 지역을 가로지르는 95번 도로, 워싱턴 D.C.와 북서 교외 지역을 연결하는 270번 도로, 워싱턴 D.C.와 서쪽 교외 지역을 연결하는 66번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의 한인 인구는 약 7만 4000명이지만, 한인 사회 집계로는 13만~15만 명이 이 지역에 사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특히 포토맥(Potomac)강을 경계로 남쪽인 버지니아주에 8만여 명, 북쪽인 메릴랜드주에 6만여 명이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의 한인 사회 특징은 경제적 이민자 중심이었던 미국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초기부터 유학생, 외교관, 주재원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1960년대 이전까지 이 지역의 한인 사회는 유학생 중심이었다. 조지워싱턴대학교, 조지타운대학교, 아메리칸대학교, 조지메이슨대학교, 메릴랜드대학교, 존스홉킨스대학교 등 유수의 대학들이 밀집하고 우수한 교육 환경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수도로서 워싱턴 D.C.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의미는 한국의 외교관과 주재원이 이곳에서 많이 거주했던 이유로 작용하였다.
1965년 「이민 및 민족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of 1965]이 개정되며 이주 한인의 수가 급증하여 한인 사회는 유학생, 입양아, 외교관, 주재원, 국제 결혼자 중심에서 경제적 이민자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으로의 한인 이민도 1970년대에 들어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한국과 유사한 기후 환경, 쾌적한 생활환경, 우수한 교육 여건 등이 이곳으로의 이주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1970년대 초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에서 한인들이 처음 정착한 곳은 메릴랜드주 프린스조지스카운티의 랜드오버(Landover)였다. 특히 이곳에 있는 ‘켄트 빌리지(Kent Village)’ 아파트,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의 휘턴(Wheaton)과 록빌(Rockville) 지역의 공공 아파트 단지에 한인들이 많이 살았다. 켄트 빌리지는 임대료가 저렴해 소수 인종이 많이 사는 곳이었고, 휘턴과 록빌 공공 아파트의 임대료도 비교적 저렴하였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던 초기 한인 이민자들이 이곳으로 몰려 집단 거주하게 되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300여 가구가 이곳에 정착하며 한인 사회를 형성하였다.1980년대 동안 워싱턴 D.C. 교외 지역은 부동산 개발의 호황을 누렸다. 이에 경제력을 갖춘 중산층 한인을 중심으로 보다 더 나은 환경과 교육 여건을 찾아 교외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특히 워싱턴 D.C.의 서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의 록빌, 포토맥(Potomac), 실버스프링(Silverspring), 버지니아주의 애넌데일, 스프링필드(Springfield), 페어팩스 등이 한인의 주요 교외 정착지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한인 교외화의 공간적 범위가 보다 확대되었다. 한인들은 메릴랜드에서는 몽고메리카운티를 넘어 하워드(Howard)카운티와 앤어런들(Anne Arundel)카운티, 그리고 버지니아에서는 페어팩스카운티를 넘어 프린스윌리엄(Prince William)카운티, 로던(Loudon)카운티까지 광범위하게 거주하였다. 이에 따라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에서 한인의 거주 패턴은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등과는 다르게 특정 지역에 밀집하지 않고 대도시 권역에서 넓게 분산한 형태로 나타난다.
2019년 미국 연방 센서스국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인구는 약 853만 6000명이다. 그중에서 한국인은 6만 6000명 정도인데, 페어팩스카운티의 한국인이 약 4만 1000명일 정도로 대다수가 페어팩스카운티에 밀집하여 거주하고 있다. 한편 메릴랜드주 인구는 약 604만 6000명이다. 그중 한국인은 4만 명 정도이며, 몽고메리카운티에 1만 5000명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의 중심지는 애난데일 한인타운이다. 애난데일 한인타운은 1980년대부터 발달한 교외형 한인타운이며, 1990년대 말까지 한인이 운영하는 대형 식품점이 10개 이상 들어서며 대도시권 한인들의 핵심 지역이 되었다. 애난데일 한인타운과 함께 거대 동양 식품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메릴랜드주의 휘턴, 한국 대기업이 운영하는 플라자와 대형 마켓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서도 한인타운이 성장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애넌데일 서쪽의 센트레빌(Centreville)이 급성장하며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 지역에서 ‘제2의 한인타운’으로 급부상하였다. 센트레빌은 도시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는 66번 고속도로 덕분에 워싱턴 D.C.와의 접근성이 우수한 곳이다. 이곳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28번 도로를 중심으로 타운하우스, 주택가, 쇼핑몰이 입지하고, 아이티(IT) 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체도 들어서 있다. 이와 같이 쾌적한 인프라를 갖춘 동시에 부동산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에 한인들이 이곳으로 많이 몰렸다.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의 한인들은 주로 연방정부의 공무원이거나 자영업 종사자로 일한다. 연방정부 공무원 중에는 우체국과 특허청 등에 근무하는 사람이 많으며, 자영업으로는 숙련도와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인 세탁소, 편의점, 식료품점, 식당, 픽업 스토어, 자동차 수리점 등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세탁업에 종사하는 한인이 많은데, 2005년을 기준으로 워싱턴 D.C.의 1,000여 개 세탁소 중 90%를 한인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워싱턴에서는 연방정부 기관들이 밀집하여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정치적 관심도가 높고 로비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고급 관료 등 정치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한인 비즈니스 업체도 많은 편이다.
이곳에는 한인 공동체도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다. 워싱턴지구 한인연합회, 북버지니아 한인회, 메릴랜드 총한인회 등 여러 자치 조직이 자생적으로 탄생하여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애난데일 한인타운에서 2003년부터 연례 행사로 ‘한인의 날’ 축제를 개최한다. 이는 매년 1만 명 이상의 한인과 미국 정치인이 참여하는 대규모 축제로 발전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워싱턴 D.C. 지역의 한인 교회들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적 기능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 문화적 기능을 수행하며 한국인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재미한인기독선교재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워싱턴 D.C./북버지니아 대도시권의 한인 교회는 300여 개에 이르며, 이 중 버지니아주에 154개, 메릴랜드주에 129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