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Religion of Korean Americans-Cathol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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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美國韓人-宗敎天主敎 |
영문 | Religion of Korean Americans-Catholic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세계)/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미국 동부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Religion of Korean Americans-Cathol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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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래 북미 지역 재미 한인의 천주교 역사와 분포 현황.
북미주에 한인 천주교 공동체가 설립된 지 2021년으로 55주년을 맞았다. 미주 한인 성당은 1965년 미국 서부 지역에서 출발하였다. 1969년 1월 미주 최초의 한인 성당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성아그네스 한인천주교회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다. 반면 미국 동부의 경우 1970년 6월 뉴욕 교구청의 인가로 맨해튼의 성 트랜스피구레이션 성당에서 장흔 신부가 집전한 한국어 미사가 봉헌되었다. 따라서 맨해튼 성당의 설립은 동부 지역에서 최초의 한인 성당의 출현을 의미한다. 북미주 한인사목사제협의회는 2016년을 ‘미주 한인 공동체 설립 50주년’으로 결정하여 다양한 기념사업을 계획하였다. 북미주 한인사목사제협의회를 중심으로 50년사 편찬, 한국 성지 순례, 기념 대미사, 기도문 선포 등 여러 기념사업을 추진하였다.
재미 한인 천주교회의 발전사를 초창기, 중흥기, 성숙기 등 3개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창기는 1965년 미국 이민법의 개정으로 다수의 한인들이 유입된 시점부터 1980년까지이다. 1960년대 후반 로스앤젤레스에는 600여 개의 개신교 교회가 세워졌으며, 한국어로 미사를 볼 수 있는 천주교회도 19개가 있었다. 신자들은 공동체 창립과 더불어 교회를 바탕으로 신앙생활에 전념하였으며, 사제를 중심으로 사목회, 레지오 마리에, 성가대, 주일학교, 한국학교 등의 운영에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를 조직하여 봉사활동에 헌신하면서 천주교회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둘째, 1980년대의 중흥기는 신자들의 집약적인 천주교회 활동으로 나타났다. 각 성당은 꾸르실료, 꾸레아, 부부애 운동, 성령 묵상회, 성서 연구 등 신앙적 성장을 도모하였다. 신자들이 본당을 초월한 심신 단체에 가입함으로서 그리스도적 사랑을 실천하였다. 한편 성령쇄신운동은 1980년 초부터 동부의 박창득 몬시뇰의 지도로 시작하여 부부 사랑으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적 가정 확립에 기여하였다.
셋째, 성숙기는 1990년 이후로 많은 천주교 공동체들이 자체의 성전을 마련한 시기이다. 지역에서 천주교회의 창설과 함께 성당 건립 운동이 결실을 맺었다. 미국 내 최대의 공동체로 부상한 뉴욕의 성 정하상 본당은 1990년 10월, 뉴저지의 성 김안드레아 교회는 1980년 1월, 시카고의 한국 순교자성당은 1992년 9월에 각각 새 성전을 건립하거나 구입하였다. 이외에도 1983년 북미주 한인가톨릭사제협의회가 창설되었다. 1984년 『가톨릭신문』, 1988년 『미주평화신문』이 창간되었고, 로스앤젤레스에서는 1997년 가톨릭 방송국이 개국하였다. 한인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봉사 단체로 한미가톨릭복지센터, 한인가톨릭의료센터, 베타니가족 등이 창립되어 어려운 환경에 있는 교우와 동포를 도왔으며, 미국 전역의 천주교회가 동참하여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따르면 북미주에서 활동하는 천주교회는 총 147개이다. 지역적 분포를 보면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북미 서부 지역이 34.1%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동남부에 해당하는 뉴욕 26.6%, 워싱턴 D.C. 13.8%, 시카고 13.8%, 휴스턴 7.4%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다. 재미 한인 천주교회는 신심 공동체, 정보교환의 공동체, 문화공동체의 기능을 수행하여 신도들이 주고받는 각종 정보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 속에서 한 가족을 형성하려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미주 한인 천주교 공동체들은 기금을 모아 건물을 구입하고, 한국에서 사제를 모셔 와서 한인 성당 또는 한인 공동체를 세우고 한인 사목만을 전담하고 있다. 현재 미주 내의 한인 공동체 수는 많지만 현지 교구 출신 사목자 수는 많지 않았다. 각 지역의 한인 천주교회는 공식적으로 현지의 각 교구에 소속되어 있다. 천주교회의 사제는 한국에서 파견 나온 신부들이 사목하고 있으며, 이들은 3~5년의 임기가 종료되면 귀국한다. 그리고 이를 대체한 새로운 사제가 파견되어 사제 역할을 수행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일부 천주교회의 경우 현지 교구 출신 한인 1.5세~3세의 사제들이 사목을 하는 교회도 있었다. 이들은 한인 천주교회에서 현지 교구 출신의 한인 사제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가능하며, 현재 각 교구 내 영어권 본당을 비롯해 한인 천주교회와 특수 사목지 등에서 역량을 펼치고 있었다.
미국 서부의 한인 천주교회를 보면 로스앤젤레스 지역은 성 아그네스 한인천주교회, 한국 순교자천주교회, 성 그레고리 한인천주교회, 성 토마스 한인천주교회, 시애틀에는 그리스도의 평화천주교회가 대표적인 한인 천주교회로 활동하고 있었다. 성 아그네스 한인천주교회는 1969년 정식 인가를 받았으며, 천주교 신자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969년 4월 ‘한국인의 밤’ 행사를 개최하여 1,000명의 재미 한인이 모이기도 하였으며, 1970년에는 첫 번째 견진성사가 거행되어 26명의 신자가 성사를 받았다. 한국 순교자천주교회는 성 콜럼반회 소속으로 정식 명칭은 오렌지카운티 한인천주교회이다. 1977년 4월에 설립되었으며, 1984년 3월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1987년 6월에는 오렌지카운티 교구의 천주교 신자 수 증가로 성 토마스 성당이 새롭게 분가되었다. 성 토마스 한인천주교회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천주교 공동체로 1995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미국 동부의 한인 천주교회를 보면 다음과 같다. 뉴욕과 뉴저지 지역은 1973년 4월 뉴욕 맨해튼 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퀸스에 성 바오로 정하상 천주교회가 설립되었다. 1980년 2월 버넌에 있는 갈멜산의 성모 본당 주임 스테파노 신부가 한인 천주교 신자들을 위한 특별 미사를 허락하여 뉴욕의 성 남요한 한인 천주교회가 창립되었으며, 1981년 뉴욕 교구청으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았다. 1974년 12월 뉴저지에 성 김안드레아 한인 천주교회[메이플우드 성당], 1986년 5월에는 뉴저지 한인천주교회의 공소설립위원회가 주도하여 성 백삼위 한인천주교회가 설립되었다. 워싱턴 D.C.의 경우 천주교 성 정바오로 천주교회[버지니아 성당]는 수도 워싱턴 D.C. 서쪽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있는 알링턴 교구 소속의 한인 교회이다. 이 천주교회는 1985년 북버지니아에 사는 한인들을 위해 세워졌다. 1996년 2월 1일 알링턴 교구가 본당 승격을 인가하였다. 시카고의 천주교회로는 1970년 5월 창립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성 세바스찬 성당에서 창립 미사를 지낸 시카고 한인천주교회가 출범하였다. 1992년 시카고 한국 순교자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입당 미사를 봉헌하였다. 성 정하상 한인천주교회[시카고북부 한인성당]는 1984년 12월 시카고의 스코스키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 조원길 신부의 첫 미사 봉헌으로 창설되었다. 보스턴 한인천주교회는 원필호 몬시뇰과 신자들이 보스턴 공동체의 건립을 논의하여 1976년 7월 성 프란시스코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여 창립하였으며, 1980년 성당을 성심교회로 이전하였고, 1996년 성 필립네리 성당을 거쳐 2012년에 현 소재지인 코르푸스 크리스티 성당으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