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인 사회

원어 항목명 Korean Society in the United States
한자 美國-韓人社會
영문 Korean Society in the United States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세계)/개념 용어(개관)
지역 미국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Korean Society in the United States
정의

주요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미국의 한인 사회.

개설

미국의 한인 사회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집합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종종 한인 공동체 또는 한인 커뮤니티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사회와 공동체는 개념상 다르지만 한인과 관련해서는 동의어로 보아도 큰 문제는 없다. 다만 한인 공동체는 특정 도시와 지역[예를 들어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가리킬 때, 한인 사회는 더욱 광범위한 지역 또는 전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포괄할 때 더욱 적합하다. 따라서 미국 전역에 있는 한인들을 가리킬 때는 미국 한인 사회가 적절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한인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인구학적, 지리적 특성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다. 각각의 주제가 중요하지만 한인 사회의 토대가 되는 지리적 요인, 그중에서도 한인타운과 같은 한인 집거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한인타운

미국에서 종족 집거지는 이민자들에게 초기 정착에 필요한 물적 및 정신적 토대를 제공하고 주류사회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민 1세대가 종족 집거지에서 경제적 기반을 다지고 자녀 교육에 헌신하면 2세대는 주류사회로 진출하고 주류문화로 동화하는 과정을 밟았다. 재미 한인도 이런 전통적인 동화 과정을 밟으면서 미국 사회에 편입되는 것이 전반적인 추세이지만 타민족 집단과 구별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한 가지는 초기에는 종족 집거지에서 생활하다 후에 교외로 진출하는 속도가 타 종족 집단보다 매우 빠르다.

1990년대 이후로 이민 오는 신규 한인 이민자 중에는 도심의 한인타운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교외에 거주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또 다른 양상은 타 종족 집단의 경우에는 혈연, 지연 등이 종족 공동체의 기반이 되지만 재미 한인의 경우에는 교회가 주된 기반이 된다. 교회는 단지 종교 기관에 그치지 않고 한인 이민자들에게는 교제의 장소이고 종족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고 후세대에 계승하는 사회문화적 기능을 수행한다. 교회와 같은 자발적 결사체가 사회문화 활동의 중심이 되면서 재미 한인 사회는 초기부터 결사체적 성격을 강하게 가졌다.

21세기 한인타운은 중요한 분기점에 놓여 있다. 한편으로는 세대교체와 교외화로 인해 한인 인구가 교외로 빠져나가고 상권이 교외로 옮겨가면서 도심의 한인타운은 쇠퇴해 가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인타운에 한국의 자본이 유입되고 차세대 전문직 종사자들이 진출하면서 한인타운의 경제권이 국제화, 대형화, 전문화되어 가고 있다.

한인은 도시, 그것도 대도시에 거주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와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접 도시들이 하나의 거대한 생활권을 이루는 광역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전체 한인 인구의 96%에 달한다. 미국 전체 인구의 80%가 광역 지역에 거주하는 점을 고려하면 한인들의 대도시 집중도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광역 지역 중에서도 한인들은 거대한 광역 도시들에 거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남부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리버사이드(Riverside)-오렌지(Orange)-샌버나디노(San Bernardino)-벤투라(Ventura) 광역 지역에 전체 한인 인구의 1/4이 살고 있어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이 미주 한인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광역 지역 내에서도 한인들은 중앙 도시보다는 교외에 더욱 많이 살고 있다. 중앙 도시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비율이 40%에 비해 교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비율은 57%에 달한다. 최근 수십 년간 미국인의 교외화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인들의 교외화 정도는 미국 평균 50%보다 앞선다. 한인들의 교외화는 인도인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인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인의 교외화가 높은 이유는 소득 수준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녀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적 전통으로 인해 교육환경이 좋은 교외로 이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의 소득이 높지 않음에도 자녀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비싼 주택 비용을 감수하고 교외로 이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최근 한인 이민자들은 도착하자마자 교외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인의 교외화를 높인다. 한인의 생활 기반이 중앙 도시에서 교외로 옮겨가면서 이들에 의존하는 한인 업소들과 교회와 같은 기관들도 교외로 옮기자 중앙 도시의 전통적 한인타운은 쇠퇴하는 추세에 있다. 한인과 한인 업소들이 떠난 자리를 베트남인과 멕시칸(Mexican)과 같은 보다 최근 이민자들이 채우면서 한인타운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미국에서 한인타운은 로스앤젤레스, 뉴욕, 시카고, 애틀랜틱시티(Atlantic City) 등 대도시와 인근 근교 도시마다 형성되어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은 처음에 호놀룰루(Honolulu)로 이주했던 한인 노동자들이 1905년 이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미국 본토 서부로 재이주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초기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공동체는 버몬트 애비뉴(Vermont Avenue), 웨스턴 애비뉴(Western Avenue), 애덤스 블러바드(Adams Boulevard), 슬로슨 애비뉴(Slauson Avenue) 사이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발생한 사우스 센트럴(South Central)로 일컬어지는 지역이다. 아시아인들이 집중해서 지역 주민이 이민자들에게 인종적으로 관대했고, 임대료가 낮았고, 다운타운과 가까워서 일자리를 찾기 쉬웠고, 대중교통이 편리했던 점이 한인들이 모이게 된 원인으로 알려졌다.

1965년 미국 「이민 및 민족법」이 개정되어 한인의 미국 이민이 가능해지자 1970년대부터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이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희덕을 중심으로 한인 사업가와 부동산 중개인들이 한인타운개발협회[Koreatown Development Association, KDA]를 조직하고 한인타운을 한인의 주거 및 경제 중심지로 개발하였다.

한인타운이 팽창하면서 중상층 한인은 더욱 쾌적한 주거 환경을 찾아 로스앤젤레스 외곽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들 지역 중에서 산페르난도 밸리(San Fernando Valley)와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에 가까운 지역은 한인 인구가 현저하게 증가한 곳이다. 동시에 글렌데일(Glendale), 패서디나(Pasadena), 몬테레이 파크(Monterey Park), 그리고 롤런드 하이츠(Rowland Heights)는 한인들의 새로운 근교 지역으로 급성장하였다. 새롭게 개발된 외곽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흩어지지 않고 지리적으로 여러 개의 클러스터를 형성하였다. 한인 사업가들은 중상층의 한인 고객들을 겨냥해서 사업체를 열기 시작하였다.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한인과 외곽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사이에는 커다란 경제적 격차가 존재한다. 생활이 어려운 이민자들은 자원이 부족하고 생활수준이 열악한 한인타운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는 주로 거주지를 옮길 여력이 없는 한국적인 생활 습관을 고수하는 노인들과 가난한 한국인 거주자들, 사업체 소유자들이 있다. 즉 한인타운 지역은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가난한 지역인 것이다. 또한 한인타운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라틴계 이민자들이 다수이면서 또한 여러 인종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한인의 거주지 분화 현상과는 달리 한인이 소유한 사업체의 위치는 이보다는 더 단일한 양상을 보인다. 한인은 주로 근교에 거주하지만, 한인타운이나 도시 소수민 지역에서 계속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교 지역의 제한된 수요 때문에 많은 한인 사업체들은 주거지보다 훨씬 덜 유동적이며 중심지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 인해 많은 한인 상인들은 근교에 거주하며 직장으로 통근하고, 한인타운 내의 거주자들이 자영업을 하는 경우는 적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은 ‘한인타운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한인타운은 공간적으로 경계를 지을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한인타운 내에 한인보다 비한인이 다수인 상황에서 한인타운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가? 이러한 혼란은 한인타운이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일어난다. 첫째, 한인타운은 다른 지역보다 한인들이 밀집해서 사는 곳을 의미한다. 둘째, 한인타운은 한인들의 사업체, 단체와 기관이 집중된 곳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실제로 한인타운에서 한인은 경제활동을 지배하고, 한국어로 쓰인 업소 간판, 한국풍 건물, 각종 한인 단체와 기관들은 한인타운이 한인의 경제문화 중심지라는 것을 알린다.

즉 거주지로서의 한인타운은 노동력과 소비자를 포함한 생활공간이지만 사업체로서의 한인타운은 생활공간에 직업 기회와 일상품을 제공하는 생산과 소비의 구역인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한인회, 한인 교회, 한인 신문사 및 방송국, 한인 봉사 및 권익 단체 등은 한인타운이 여전히 한인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지라는 것을 알린다. 즉 단일한 한인타운은 없고 인구,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 한인의 존재와 영향력이 상이한 형태로 나타나는 다양한 한인타운이 존재한다.

뉴욕/뉴저지 대도시권 한인타운

일제 강점기 40여 명의 한국 유학생들로 시작된 뉴욕 한인 사회는 1965년 미국의 「이민 및 민족법」 개정 이후의 신한인 이민자들의 주요 정착지가 되었다. 2000년대 초 뉴욕-뉴저지(New Jersey) 일대에는 15만 명 정도의 한인들이 거주하여 로스앤젤레스카운티와 오렌지카운티를 연결하는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한인 공동체가 되었다.

플러싱(Flushing)은 뉴욕시 한인 인구의 약 1/4이 거주하고 있어서, 뉴욕 한인들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플러싱 다운타운 약 12블록에 걸쳐 한인 주택과 한인 소유 업소가 집중적으로 들어서 있다. 이 지역이 플러싱 한인타운으로 알려졌는데, 루즈벨트 애비뉴(Roosevelt Avenue)와 유니온 스트리트(Union Street)의 교차로가 그 중심지가 된다. 유니온 스트리트와 플러싱 147번가 사이 루즈벨트 애비뉴 선상의 아파트에는 한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노인들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 한국 노인들은 자녀들이 롱아일랜드(Long Island)나 뉴저지 지역의 교외로 재이주한 후에도 한인타운에 머물러 있다.

맨해튼에는 뉴욕 한인의 12% 정도가 살고 있는데, 맨해튼 거주 한인들은 미국에서 오래 거주한 이민자들,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회사에서 근무하는 교포 2세들, 그리고 맨해튼 지역의 대학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맨해튼에는 한인 집중 거주 지역은 없지만, 맨해튼 32번가와 브로드웨이(Broadway)를 중심으로 한인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소위 브로드웨이 한인상가라고 불리는 지역에는 약 400개 정도의 한국어 간판을 단 한인 도매상점들이 있다.

지난 20년 동안, 롱아일랜드와 뉴저지 북부 지역에 이르는 뉴욕 교외의 한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교외화는 3가지 요소에 기인한다. 첫째로, 처음에 플러싱 및 퀸스(Queens)의 다른 한인 집중 지역에 정착했던 한인 이민자들이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미국 사회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범죄가 적고 학교의 질이 좋은 뉴욕 교외로 재이주 한다. 뉴저지의 버건카운티(Bergen County)와 뉴욕주의 롱아일랜드 및 웨스트체스터카운티(Westchester County)가 한인들에게 인기 있는 재이주 지역이다. 둘째로, 1.5세 및 2세 한인 성인 인구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도 교외 한인 증가의 중요 요인이 된다. 학교를 마치고 미국 회사에서 전문 직업을 잡은 1.5세와 2세 한인들은 언어장벽이 없어서, 맨해튼뿐만 아니라 뉴욕, 뉴저지주의 교외 카운티의 백인 지역에 집중해 살고 있다. 셋째, 한인 상사 주재원과 맨해튼에 있는 여러 한국 기관에 근무하는 한인들도 주로 교외에 거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뉴욕 교외의 한국인 인구 증가의 요인이 된다. 맨해튼 허드슨(Hudson)강 건너편에 있는 버건카운티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뉴욕의 교외 지역이다. 포트리(Fort Lee)와 팰리세이즈 파크(Palisades Park) 다운타운 지역은 버건카운티에서 한인이 집중된 일종의 교외 한인타운이다.

요약 및 정리

한인타운 형성 과정과 한인의 주거 양식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20세기 초 미국에 이민 온 유럽계 이민자들이 대도시 도심에 있는 자신들의 종족 공동체에서 교외로 이주하면서 생겨난 공백을 한인들이 채우면서 한인타운이 형성되었다. 둘째, 한인은 자영업을 통해 경제적 신분상승을 이루고 이를 교외화로 주거의 신분상승을 도모하였다. 셋째, 한인은 초기 정착 단계에서부터 흑인, 푸에르토리칸(Puerto Ricans)과 같은 저소득층 유색 소수인종 지역을 회피하고 가능한 한 떨어진 곳에 정착하는 경향이 있다. 한인이 흑인 고객을 상대로 흑인 지역에서 장사하면서도 사는 곳은 중산층 백인 거주 지역인 경우가 많다. 이런 한인들의 태도와 행위는 흑인 주민들로부터 ‘부재지주’라는 비판을 받고 한인 가게를 상대로 한 불매운동의 빌미로 작용하기도 한다.

넷째, 중산층 한인이 교외로 이주하면서 한인타운에는 신규 이민자, 노동자 계층, 저소득층, 노인 등이 거주하여 계층에 따른 주거 분화가 두드러진다.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빈곤, 실업, 사회적 고립 등의 문제를 경험하고 미국 주류사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직업과 일상생활의 대부분은 한인타운에서 보낸다. 반면 교외의 한인들은 교육, 여가, 보안 등에서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한다. 다섯째, 한인타운에는 한인보다 멕시칸 등 비한인의 더욱 높은 비율로 살고 있어 한인타운은 한인들의 주거 중심지라기보다는 상업 및 행정 중심지로서 기능한다.

여섯째, 광대한 지역에 산재한 한인들은 교회, 민족 언론 및 방송매체, 기타 자발적 결사체에 의해 교류하고 공동체의식을 갖기 때문에 한인 공동체는 결사체적 공동체의 성격을 갖는다. 특히 교회는 종교적 기능 외에 다양한 사회문화적 기능을 수행하여 한인 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한국어 신문과 방송은 광대한 영역에 산재한 한인들에게 모국과 동포 사회 소식을 전달하고, 동포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선도하여 집단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곱째, 한인이 사회경제적으로 신분상승을 이루고 교외로 이주하면서 생겨난 사업체와 주택의 공백을 베트남인, 멕시칸, 중국인들과 같은 신이민자들이 채우는 종족계승이 진행된다.

참고문헌
  • 『미주 한인이민 100년사』(한미동포재단·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남가주기념사업회, 2002)
  • 『북미주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7)
  • Choy, 『Koreans in America. Chicago』(Nelson-Hall, 1979)
  • Givens, 「The Korean Community in Los Angeles County」(MA dissertation,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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