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美國韓人-文化藝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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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세계)/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미국 |
시대 | 현대/현대 |
미국 한인의 주요 거주지인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한인의 미술, 음악 및 문학 활동 개관.
미국에는 200만 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미국 한인[Korean American; Korean living in the America]의 문화와 예술은 한인이 거주하는 미국 전역에서 향유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술과 음악, 그리고 문학 분야에서 미국 한인의 문화예술을 살펴보기 위해, 특히 미국 한인이 집중 거주하고 있는 뉴욕 지역과 로스앤젤레스[LA] 지역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뉴욕 지역에서 전개된 미국 한인의 미술 활동은 단체보다 개인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1960년대에 김환기(金煥基)와 김병기, 백남준(白南準) 등이 뉴욕으로 건너와 활동하였으며, 강익중과 조숙진 등이 미국 주류 화단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김보현과 한용진, 임충섭, 김나, 김웅, 이일, 김원숙, 최성호, 김영길 등 많은 중견작가와 더불어 서도호, 바이런 킴, 마이클 주 등 1.5세대들도 주류 화단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문화원 또한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스페이스 월드[Space World Gallery]’ 등 많은 갤러리와 전시 공간을 통해 한인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뉴욕의 대표적인 미술 단체로는 뉴욕 한인미술협회[Korean New York Artist Association, KNYAA]가 있다. 1993년 한인 미술가가 주축이 되어 창립된 이 단체는 “미술인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여 향상과 권익을 꾀하고, 뉴욕을 기점으로 미국 동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자긍심을 높임과 동시에 문화 교류를 통하여 한인 작가들의 우수한 작품성을 미주 사회에 알리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정관에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뉴욕 한인미술협회는 설립 이후 매년 협회 정기전을 가짐과 동시에 한미 작가그룹전,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 100인전 등의 정기전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더불어 꿈나무 사생대회와 장애아동 그림대회, 포트 리 아트 페스티벌(Fort Lee Art Festival) 등 미국 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예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지역 한인 미술의 경우에는 스스로 뉴욕과 분위기가 다르다고 인정한다. 백남준과 강익중 등 미국 주류 화단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들이 주로 뉴욕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의 교류 전시회도 자주 열리고 있다. 1964년 발족한 남가주한인미술가협회[Korean Artists Association of Southern California]를 중심으로 로스앤젤레스 지역 한인들의 미술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남가주한인미술가협회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족한 한인 미술가 단체로 매년 한국문화원과 공동 정기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장학사업을 통해 한인 예술가를 양성하고 있다. 또한 한미미술재단[Korean Arts Foundation of America, KAFA]은 1989년 미술을 애호하는 한인들을 중심으로 창립된 비영리단체인데, 2004년부터 매년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능한 한인 작가들을 발굴하여 1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이 ‘KAFA 미술상’은 미국 전역에서 많은 젊은 작가들이 응모하고 있으며, 수상자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2009년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KAFA 미술상 수상자 11인인 서도호, 바이런 킴, 남윤동, 조숙진, 앨리스 박, 민연희, 박정미, 마리아 박, 김제나, 임원주, 이재이 등이 참여한 ‘미국 속의 한국 작가 11인전(展)’을 개최하였고, 지난 2021년에는 LA 한국문화원 아트갤러리에서 ‘글루브 호모 하이(Glub Homo Hii)’를 주제로 하여 제17회 KAFA 미술상 공모전 수상자 곽영준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뉴욕 지역에서 한인들의 음악 활동은 한인의 문화예술 활동 가운데 가장 자랑할 만하다. 홍혜경과 신영옥, 장영주, 정 트리오 등 세계적인 인물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는 1984년 이순희가 설립한 한국음악재단과 1986년 이병천이 창단한 프니엘 콘서트 콰이어[Peniel Concert Choir]이다. 한국음악재단은 1995년 강효를 음악감독으로 세종 솔로이스츠를 창단하였으며, 이들 단체를 중심으로 재미 한인 음악가들의 연주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1964년 남가주 한인음악가협회를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조민구와 정낙연, 김옥자, 김창무, 권길상, 이우근, 김응자, 조광혁, 박정숙, 김애인, 장대욱 등 많은 한인 음악인들이 이 지역에 터를 잡고 활동하였다. 그중에서도 조민구는 45년 동안 LA 필하모니 교향악단 지휘자로 역임하였으며, 권길상은 미국 사회에 한국 동요가 뿌리내리는 데 기여하였다. 한편 머나먼 미국 땅에서 국악 또한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데, 1973년 재미국악원이 발족하여 많은 후계자들을 양성하였다.
미국에서 한인들의 문학 활동은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와 모국어인 한국어를 쓰는 경우 두 가지로 나뉜다. 1980년대 이전부터 한인 문학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유일한과 강용흘, 박노영, 박인덕 등이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또 김은국, 김용익, 피터 현 등 1.5세대 작가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80년대부터 한인들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내용이 풍부해지고 수준도 향상되었는데, 박태영과 김난영, 캐시 송, 김정미, 차학경이 등장하여 활동하였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한인 문학의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이 시기 작가들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민 문학을 통해 미국 주류 문단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 그 가운데 이창래는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 『제스쳐 인생[Gesture Life]』 등의 작품으로 미국 주류 문단에 등장하였으며, 노라 옥자 캘러도 『위안부[Comfort Weman]』로 작품성이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았다. 수잔 최의 『외국인 학생[The Foreign Student]』, 박태영의 『한국의 울부짖음[Cry Korea Cry]』 등이 이런 부류의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2000년대에는 프랜시스 박과 전저 박, 린다 수 박, 최양숙 등이 미국의 문단 주류에 진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미국 서부 지역에서 한국 문학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1982년 미주 한국문인협회[Korean Literature Society of America]가 발족되어 『미주문학』을 발간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미주 한국문인협회 회원은 소설가 송상옥과 시인 김호길, 전달문, 김병현, 권순창 등 한국에서 이미 문단 활동을 하다가 도미한 문인들이었다. 미주 한국문인협회 발족 이전에도 고원, 김용팔, 황갑주, 박시정, 이세방, 황영애, 전진호 등의 작가들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미주 한국문인협회는 다양한 세미나와 작품 낭독회 등의 문학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회원 작품집 『미주문학』을 발행하고 ‘미주문학상’을 제정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일반적으로 미국 한인은 전통적인 한국적 문화와 예술을 향유함으로써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일부 조사 결과도 그러한 기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약화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미국 한인들의 정체성은 경계인 내지 주변인으로서의 혼종성[hybridity]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한인들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문학 활동과 음악 및 미술 활동 등도 혼종성을 띤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미국 한인은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다. 나아가 이제 그 혼종성은 둘 다[both~and]라기보다는 둘 다 아닌[neithe~nor] 상태로 넘어간다고 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한인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예술 역시 그러한 정체성을 반영한다. 이제 다양한 형태의 이동을 통한 국제적인 이주 현상은 단일국가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다양한 인종적·민족적·문화적 이동을 수반하면서 초국가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한인과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예술 속에 나타나는 경계인으로서의 의식과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부분도 이러한 초국가적 경계 넘기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