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Educational Situation of Korean America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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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美國韓人-敎育 |
영문 | Educational Situation of Korean Americans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세계)/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미국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Educational Situation of Korean America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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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 특성과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미국 한인의 교육 현황.
미국의 한인 이민 차세대들이 정체성 강한 한국계 미국인 및 능력 있는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한국어와 한국 역사 문화를 교육하였다. 미국 한인 교육의 역사는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주로 시작된 한인 이민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주로 주말 한국학교에서 ‘계승 한국어[Korean as a Heritage Language]’를 가르치며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목적으로 진행되었고 세계 최대 규모와 역량을 갖추어 한인 교육의 모범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교육의 질적 향상과 더불어 한국어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교육이 활성화됨으로써 보다 완성되고 균형 잡힌 교육으로 발전하며 정체성 강한 글로벌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도착한 97명으로 미주 한인 이민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1905년 일본의 제지로 미국 이민이 폐지될 때까지 총 65회에 걸쳐 7,226명의 한인이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최초의 교육기관은 그리스도한인연합감리교회[현 그리스도감리교회, 1903년 11월 설립] 교인을 중심으로 1906년에 설립된 한인기숙학교이며, 첫 학기에 8학년까지 65명의 학생이 등록하였다. 1907년에 정규학교로 인정을 받았으며, 1908년 한인 교육의 중심이라는 뜻에서 한인중앙학교로 개칭하고 여학생을 입학시켜 한인 학생을 위한 한국 내외의 첫 남녀공학 학교가 되었다. 이후 1915년에 여학생이 분리되어 한인여학원이 설립되었고 1918년 한인기독학원으로 개칭하였다. 1920년에는 한인중앙학교가 폐교되고 한인기독학원으로 통합되는 등의 변화를 겪었다.
전일제 정규학교가 아닌 주말 한국학교의 시초는 1907년 4월 7일에 설립된 하와이섬 힐로(Hilo)의 힐로한인소학교로 추측되며 곧이어 동명소학교[5월 10일], 동신학교[8월 25일], 육영학교[11월 4일]가 설립되었다. 1923년에는 하와이에서 출생[1903년 5월 8일]한 첫 한인이 국어를 가르친 대동국어학교[1923년 설립]와 신흥학교가 설립되는 등 1920년대 초반까지 총 26개 한글학교가 운영되었고 그중 15개 학교가 교회 부설이었다.
이민 학부모들은 방과 후와 주말에 열린 한국학교를 ‘소학교’ 또는 ‘국어학교’라 불렀는데 국어학교 학비가 부족한 학부모들을 많은 한인들이 후원하였으며 1911년부터는 국민회(國民會)에서 자체 교과서를 출판하는 등 차세대 민족교육에 대한 의욕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한인들이 농장을 떠나고 하와이 외국어 학교법으로 학교 운영이 까다로워지면서 하와이의 한인 학생 총 1,728명 중 732명이 국어학교에 다닌 1928년을 정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여 1940년 대동국어학교, 1959년 신흥학교가 폐교되며 한인 교육의 단절기를 맞이하게 된다.
1965년 미국의 「이민 및 민족법」 개정으로 한미 간 공식 이민이 재개되면서 1965년부터 1980년 사이에 29만 9000명의 한인 이주가 이루어졌다. 당시 이민자들에겐 생존과 적응에 필요한 미국화, 영어 교육이 급선무였던 시대였으므로 사탕수수 농장 이민 선조들에 비해 한인 정체성 교육에 대한 열정이 크지는 않았지만 뜻있는 한인들에 의해 새로운 이민자 자녀를 위한 주말 한국학교가 설립된다. 1970년 하와이 한인사회학교[하와이 최초 한인 교회인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부설]가 최초이고 곧이어 워싱턴 통합한국학교[1970], 앤아버 한국학교[1971], 디트로이트 세종학교[1972년]가 설립되었으며 1970년대 후반까지 미 전역에 주말 한국학교 설립이 지속적으로 확산되었다.
1980년대부터 한국 정부의 재외동포 교육기관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과 함께 워싱턴 D.C., 로스앤젤레스, 뉴욕, 시카고 등지에 한국교육원이 설립되어 민족교육 활성화를 돕게 되었다.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이민자들이 생존과 적응의 문제가 어느 정도 극복되면서 정체성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동시에 한인 이주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1997년 재미 한인 수가 180만 명을 상회하고 주말 한국학교 또한 900여 개에 이르며 중흥기를 맞는다.
1980년대 초에는 주말 한국학교 간 공동 협력을 통한 모임이 결성되는데 1981년 동부 지역 중심의 재미한인학교협의회[초대 회장 주하성], 1982년 서부 지역 중심의 한국어교육기관협의회(Korean School Association)[초대 회장 노재민]가 대표적이다. 이후 재미한인학교협의회는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tional Association of Korean Schools, NAKS]로 개칭하였고 2021년 현재 산하 14개 지역 협의회 및 약 700개 회원교를 둔 세계 최대 한인 교육 단체로 성장하였다. 한국어교육기관협의회 또한 미주한국학교총연합회[Korean School Association of America, KOSAA]로 개칭하고 12개 지역 협의회 및 약 200개 회원교를 두고 학교 간 교류와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1990년대 초에는 정규학교 교육 관련 학부모와 교사 모임도 결성되는데 1990년 뉴욕한인학부모회[Korean American Parent Association of Greater New York], 1992년 뉴욕 한인교사회[Korean American Teachers Association of New York, KATANY] 등 미국의 학교 시스템 이해, 학교와의 소통 등 미국 사회 정주를 돕는 노력과 단체도 증가하며 한인 교육은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으로서의 필요를 채워 나갔다.
1997년 11월 ‘SAT Ⅱ 한국어 시험’ 실시, 2003년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등 주요 계기를 맞으며 한인의 민족적 역량과 차세대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여기에 한국의 국제적 위상 고조, 한류의 확산과 함께 세계화 시대를 맞아 이중언어 교육의 필요성 또한 높아지면서 한국 언어문화 교육에 대한 인식 변화와 열기가 고조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맞추어 주말 한국학교 또한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과 함께 기존 한국어 교육 중심이던 교육과정에서 한국 역사·문화 교육을 활성화하며 보다 완성된 뿌리 교육을 위한 노력들을 펼치고 있다. 과거 미국 사회 적응과 미국인으로서의 성공이 우선시 되던 시대에서 정체성 강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자 교육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주말 한국학교는 한인 교육의 요람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2021년 현재 미국 내 주말 한국학교는 약 900개, 교사 약 9,000명, 학생 약 5만 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이며, 세계 한인 교육의 모범이 되고 있다. 또한 주말 한국학교 수업의 공립학교 외국어 학점 인정, 공립학교 내 한국어 학급 증설, AP[Advanced Placement] 과목 한국어 제정 운동 등 미국 내 교육에 한국어와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도 주력하며 110여 년 전 이민 선조들이 뿌린 민족교육의 씨앗이 열매를 맺고 성장하여 주류사회에 정체성 강한 한국계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한편 세대 간 언어 전환, 다인종 한인과 2세대 학부모의 증가 등 이민 사회 전환기와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차세대 교사 양성, 학부모 교육, 신기술 활용 교수방법 개발 등 변화에 대응하고 도전하면서 한인 교육의 맥을 발전적으로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