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춘추』

한자 鷄林春秋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917년 12월 31일
간행 시기/일시 1918년 1월 31일
소장처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돌 스트리트 2444
간행처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성격 학생 잡지
간행자 최갑술[사장], 조성환[주필]
표제 계림춘추
정의

1917년 12월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계림춘추사에서 발간된 호놀룰루 중앙학원의 재미 한인 학생 잡지.

개설

호놀룰루 중앙학원 교사인 조성환의 주도로 한인 학생들 간의 연락을 원활히 하는 한편, 학생들의 정신적 단결과 지식 교환을 도모하기 위하여 『계림춘추』가 발간되었다. 『신한민보』 광고에는 1917년 12월 31일 『계림춘추』 제1권 제1호의 발행 소식이 실려 있으나 현재 원본은 찾을 수가 없다. 1918년 1월 31일에 발행된 『계림춘추』 제2호가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Center for Korean Studies]에 소장되어 있다. 『신한민보』에는 『계림춘추』에 대하여 “그 언론이 순정하고 면목이 아름다워서 가히 일반 인사의 환영을 받을 만하더라.”와 같은 평가가 실려 있다.

편찬/간행 경위

호놀룰루 중앙학원은 재미 한인 자녀의 교육을 위한 자치 기관이며, 1906년 9월 2일 하와이 감리교회에서 설립하였다. 1907년 초 하와이 정부가 정규 학교로 인가하여 졸업생의 상급 학교 진학이 가능해졌다. 호놀룰루 중앙학원은 하와이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민족 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계림춘추』는 호놀룰루 중앙학원의 교사 조성환과 학생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학생 잡지라고 할 수 있다. ‘본사 고백’에 따르면 『계림춘추』에서 계림은 ‘조선’, 춘추는 ‘동양 문학을 대표하는 명사’로, 즉 조선 문학을 뜻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계림춘추』의 목적은 각 학교의 교육 방법과 학생들의 성적을 기재하여 학술상 기능을 교환하는 것과 교육계의 주의를 통일하여 학생 교육에 이바지하고자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지적 상황

계림춘추사의 사장은 최갑출, 부사장 이승신, 주필 조성환, 부주필 겸 편집에는 필시성, 박관두, 이복실, 최순이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인쇄소는 한인교보사로 주소는 하와이 호놀룰루, 우함[사서함] 1341이다. 오아후, 하와이, 카우아이, 마우이 네 개 섬에 발송부 임원 3~5인이 배치되어 하와이 각지로 발송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1권 가격 15전, 1년 구독료 1원 50전, 반년 구독료 80전이었다.

형태

표지와 속지, 차례 제외 본문은 28쪽이다.

구성/내용

현재 전하는 『계림춘추』 제1권 2호에는 주필의 사설, 부주필의 논설, 학생 수필, 방화중의 창간 축사, 태평양학원 박진한의 수필, 중앙학원 행사 및 소식, 학생 연설, 춘향전의 영문 번역 연재물, 중앙학원의 체육 교과목 및 미국인 교사 러불리 소개, 격언, 광고, 본사 공고 등이 실려 있다. 여학생들의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신매리는 조선 문학에 대한 연설과 새해 감상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최순이는 애국심에 대한 수필을 썼다. 방화중은 창간 축사에서 잡지의 목적이 하와이 학생계뿐 아니라 해외 한인 학생계의 정신적 구심이 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본사 고백’에 따르면 윤리, 종교, 역사, 소설, 사조, 그 외 여러 가지 과학에 대한 내용을 다루되, 신분에 위반되며 정도에 불급한 정치적 언론이나 개인을 비평하는 언론은 싣지 않겠다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고등학생들의 학술 교류를 위해 출간된 하와이 최초의 학생 잡지라는 데 의의가 있다. 『신한민보』에 1917년 창간 소식이 실려 있고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 제2호가 보존되어 있지만 1918년 이후 언제까지 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 『계림춘추』1, 2(계림춘추사, 1918)
  • 이덕희, 『하와이 이민 100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중앙M&B, 2003)
  • 「계림춘추 발간」(『신한민보』, 1918. 1. 3)
  • 「계림춘추를 발간」(『신한민보』, 1918.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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