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하와이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24개 한인 단체 대표자 30명이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결성한 단체다. 9월 2일 개최된 한인합성협회 총회는 “기관 신문을 발행하되 그 명칭을 『한인합성신보(韓人合成新報)』라 하며, 기왕에 각 단체가 발행하던 회보들을 『합성신보』로 통합하여 실력을 집중하고 언론일치를 도모하게 함”이라고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의 『공진회보』와 『친목회보』를 통합하여 10월 22일부터 한인합성협회 기관지 『한인합성신보』를 발행하였다. 한인합성협회에는 공진회, 와이파후공동회, 친목회, 국민동맹회, 부흥회, 의성회 등이 참여하였는데, 협회의 회원은 1908년 2월경에 800여 명이었고, 그 후 자강회가 합성협회에 통합되면서 회원이 1,000명을 넘었다.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와 북미의 공립협회가 1908년 11월 사실상 통합에 찬동하면서 하와이 내에서 한인합성협회와 한인전흥협회의 통합에 대한 압력이 더욱 거세졌다. 이에 1909년 1월 25일 한인전흥협회와 한인합성협회가 통합하였다. 『한인합성신보』는 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의 기관지 『신한국보』로 제호를 바꾸어 발행되었고, 전흥협회의 기관지 『전흥월보』도 1909년 2월 12일 『신한국보』로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