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Hawaiian Korean Christian advoc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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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人敎會報 |
영문 | Hawaiian Korean Christian advocate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원어 항목명 | Hawaiian Korean Christian advoc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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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잡지 |
관련 인물 | 이승만|현순|김이제|홍한식|안현경 |
창간인 | 하와이 한인감리교회 |
1914년 미국 하와이 한인감리교회에서 간행한 교회 잡지.
『한인교회보(Hawaiian Korean Christian Advocate)』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포와한인교보(布哇韓人敎報)』 후속으로 한인감리교회에서 1914년부터 발행한 잡지이다.
『한인교회보』는 교리 소개와 교회 소식을 전달하는 한편, 재미 한인들을 계몽하고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며 재미 한인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창간되었다.
『한인교회보』는 1914년 4월 제1권 제1호가 간행되었는데, 사장에는 이승만(李承晩), 편집은 홍한식, 발행은 안현경이 맡았고, 1918년까지 이승만이 사장을 맡았다. 1914년 발간 당시 부수는 200권, 책값은 10센트였다. 잡지의 영문은 Hawaiian Korean Christian advocate이다.
1905년 11월부터 하와이 호놀룰루 한인감리교회가 『포와한인교보』를 발간하였고, 1912년에는 매달 700부를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그러나 1911년 이후 연간 1달러의 구독료를 제대로 걷지 못해 재정적 난관으로 폐간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1913년 8월 이승만이 한인중앙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교회 재정에 관여하면서 『포와한인교보』를 둘로 구분하였다. 『포와한인교보』는 주일 공과를 위한 교회보로 발간되고, 주일 공과 이외의 논설, 하와이 교회 및 감리교 청년회 소식, 독자 기고문 등의 기사는 1913년 9월부터 『태평양잡지』가 실어서 발간하게 되었다.
김원용(金元容)에 따르면 『포와한인교보』는 1914년 4월부터는 제호를 『한인교회보』로 바꾸었고, 이때부터 서서히 성경 공과뿐만 아니라 월간 잡지에 필요한 내용도 갖추게 되면서 예전 월간지의 성격을 되찾았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다수의 『한인교회보』를 불온 신문, 잡지로 규정하고 배포 금지 처분을 내렸고, 1921년 9월, 인천 미이미교회 오기선 목사 앞으로 호놀룰루에서 보낸 『한인교회보』 제7호, 제8호를 압수하였다.
『한인교회보』 1925년 2월호는 총 42쪽으로, 연도 표기가 조선 기원 4259년, 구주강생 1925년, 대한민국 7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글 섹션의 판권은 편집 겸 발행인 김이제, 주필 현순, 출판인 프라이[Dr. Wm. W. Fry]로 되어 있고, 영문 섹션의 판권은 주필 현순, 부주필 김이제, 편집인 프라이로 되어 있다. 『한인교회보』 1929년 4·5월호는 총 30쪽으로, 한국어 섹션 편집인은 홍한식, 영어 섹션 편집인은 존 헤들레이[Dr. John Hedley], 출판인은 프라이 등으로 되어 있다. 1930년대에 출간된 『한인교회보』는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발간이 중단되거나 정간된 것 같다.
1941년 9월호는 총 30쪽으로, 임원진은 주필 겸 편집인 임두화, 영어 섹션 헨리 아펜젤러[Rev. Henry D. Appenzeller, D. D], 인쇄인 이경선 등으로 되어 있다. 1944년 3월호는 총 26쪽으로, 임원진은 주필 겸 편집인 임두화, 영어 섹션 앨리스 아펜젤러[Miss Alice R. Appenzeller, Ph.d], 인쇄인 홍한식 등으로 되어 있다. 1945년 1월호는 총 28쪽으로, 임원진은 앞 호와 동일하다. 『한인교회보』는 현재 1925년 3개, 1929년 2개, 1941년 4개, 1944년 6개, 1945년 1개 등 총 16개 호가 남아 있으며 정확한 종간 시기는 알 수 없다.
『한인교회보』는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발간된 최초의 재미 한인 언론 매체로, 재미 한인들에게 고단한 삶의 휴식처를 제공함과 동시에 독립의 꿈을 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