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시사』

원어 항목명 The Korean Pacific Times
한자 太平洋時事
영문 The Korean Pacific Times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18년 11월 28일
폐간|종간 시기/일시 1926년 3월 15일
원어 항목명 The Korean Pacific Times
성격 신문
발행인 박용만
총호수 301호
정의

1918년 11월 28일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에서 박용만이 창간한 국문판 주간 신문.

개설

1918년 11월 28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박용만(朴容萬)박용만의 동지들이 갈리히 연합회의 후원을 받아 창간한 주간 신문이다. 1926년 3월 15일까지 7년 4개월 동안 총 301호를 발행하였으며, 그 내용이 충실하여 호평을 받았다.

창간 경위

『국민보』 주필로 한인 사회 여론을 이끌어 가던 박용만에 도전하여 1913년 9월 이승만『태평양잡지』를 발간하였다. 박용만은 1914년 8월 『국민보』 주필을 사임하고 국민회를 탈퇴한 뒤 조선인국민군단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1918년 11월 갈리히 연합회를 조직하고 갈리히 연합회의 기관지로 『태평양시사』를 발간하였다.

형태

갈리히 연합회에서 창간한 『태평양시사』는 1919년 3월 조직된 대조선독립단의 기관지가 된다. 처음에는 등사판으로 제작되었다가 1920년 12월 4일에 그 체제를 개량하고 인터타이프(intertype) 식자 기계를 이용하여 1926년 3월까지 주간 신문으로 발행되었다.

구성/내용

『태평양시사』 내용은 주로 한인들의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사회·교육·시사와 논설이었다. 1921년에는 상해 한국 적십자사 서병호가 보낸 내용을 근거로 이승만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에 정정 기사를 요구하는 동지회 정윤필·김봉서 외 35명이 태평양시사에 침입하여 한상여·이상호·허용·정국선·김한경 등을 구타하고 기자재를 파괴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한인 사회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변천과 현황

1919년 3월 박용만대조선독립단을 조직하면서 『태평양시사』대조선독립단의 기관지로 이관되었다. 그 후 박용만은 시베리아와 만주로 나가 있었지만, 대조선독립단은 1926년 3월까지 『태평양시사』를 발간하였다. 역대 주필은 박용만·조용하·함잠여·이상호·황인환이었다.

의의와 평가

1918년 이승만의 ‘재정 흠축 사건’이 일어나자 박용만갈리히 연합회의 기관지로 『태평양시사』를 창간하여 이승만『태평양잡지』와 여론 대결을 펼쳤다. 그로 인해 이승만의 지지 세력으로부터 피습[태평양시사 습격 사건]을 받기도 하였으나, 여러 사건 속에서도 박용만이 처음 의도했던 대로 한인들의 독립 정신을 고취하며 조국 독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참고문헌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김창범, 『미주 한인 이민 100년사』(코람데오, 2004)
  • 김도훈, 『박용만-미 대륙의 항일 무장 투쟁론자』(역사공간, 2010)
  • 최기영, 「한말-일제 시기 미주의 한인 언론」(『한국근현대사연구』8, 한국근현대사학회, 199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