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공보』

원어 항목명 The Korean New World
한자 大同公報
영문 The Korean New World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07년 10월 3일
원어 항목명 The Korean New World
성격 신문
정의

1907년 재미 한인 민족 운동 단체인 대동보국회가 창간한 주간 신문.

개설

1905년 12월 조직된 대동교육회(大同敎育會)가 1907년 3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로 확대, 개편되면서 창간된 대동보국회의 기관지다. 1907년 10월 3일 창간된 『대동공보』는 1909년 4월 9일(제25호)까지 발행되었다. 1910년 2월 국민회와 대동보국회가 합쳐져 같은 해 5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가 되면서 『대동공보』『신한민보』에 통합되었다.

창간 경위

1905년 12월 대동교육회가 국민 계몽과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Pasadena)에서 결성되었다. 대동교육회는 안정수, 김찬일, 장경, 유성춘, 김우제 등이 교육을 통한 실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였으나, 일제의 침탈이 심해지자 1907년 3월 회명을 대동보국회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정치 운동 단체를 표방하였다. 대동보국회는 내외 협력과 보구군국(保救君國)을 목적으로 하며 인민 교육의 확장, 인민 실업의 흥기, 인민 자치의 창설을 강령으로 하였다. 같은 해 10월 3일 대동보국회 기관지 『대동공보』를 창간하여 1909년 4월 9일 제25호까지 발행하였다.

형태

『대동공보』는 1907년 10월 3일부터 1909년 4월 9일까지 총 25호가 발행되었다. 영문 제호는 『The New Korean World Wide』, 『The New Korean World』, 『The Korean New World』 등으로 여러 번 변경되었다. 창간호부터 11월 14일자 제7호까지는 석판(石版)으로 발행되었고, 이후 활판 인쇄를 하였다. 사장 문양목(文讓穆), 주필 최운백(崔雲伯)·백일규(白一圭), 인쇄 박도선(朴道善)·이민식(李敏植), 번역 이학현(李學鉉)·김미리사(金美理士) 등으로 구성되었다.

구성/내용

『대동공보』는 논설과 대동보국회 회보·교포 소식·국내외 소식·투고 등으로 이루어졌다. 대한제국 황제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충성을 강조하였으며, 미주 동포들의 국권 회복 의식을 고양하는 데 주력하였다.

변천과 현황

신문 발매소는 미주 본토에 10개소, 하와이에 3개소, 국내에 22개소, 청에 1개소가 있었고, 발행 부수는 2,000부 내외였다. 『대동공보』는 재정난으로 한국에 지원금을 요청하였으나 큰 도움을 받지 못하였고, 동포들의 기부금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1910년 2월 국민회와 대동보국회가 합쳐져 같은 해 5월 대한인국민회가 되면서 『신한민보』에 통합되었다.

참고문헌
  • 최기영, 「미주 대동보국회의 국권 회복 운동」(『한국근대계몽운동연구』, 일조각, 1997)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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