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The Korean National Hera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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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民報 |
영문 | The Korean National Herald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창간 시기/일시 | 1913년 8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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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The Korean National Herald |
성격 | 기관지 |
관련 인물 | 박용만|이승만 |
발행인 |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
1913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의 기관지로 발간된 주간 신문.
1908년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친일 외교관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를 처단하는 의거가 있은 후 미국 본토뿐만 아니라 하와이에서도 한인 사회의 통합이 진행되었다.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와 북미의 공립협회가 1908년 11월 사실상 통합에 찬동하면서 하와이 내에서도 합성협회와 전흥협회의 통합에 대한 압력이 거세졌다. 이에 1909년 1월 25일 한인전흥협회와 한인합성협회가 통합하였다. 1909년 2월 1일 국민회가 탄생하면서 『한인합성신보』는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의 기관지 『신한국보』로 제호를 바꾸어 발행되었고, 전흥협회의 기관지 『전흥월보』도 1909년 2월 12일 『신한국보』로 통합되었다. 1910년 2월에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가 국민회에 통합되면서, 1910년 5월 국민회는 대한인국민회로 개칭하였다. 『신한국보』는 주 1회 발간되다가 1913년 7월부터 주 2회 발간되었으며, 1913년 8월 13일부터 『국민보』로 제호를 바꿔 달았다.
『국민보』는 타블로이드 배대판 크기로 4면 6단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사설은 제2면에 수록되었다.
『신한국보』에서 『국민보』로 이름을 바꾸고 발간을 시작한 1913년 8월 13일부터 100호가 발간된 1914년 8월 1일까지 편집인은 박용만(朴容萬)이 맡았다. 1922년 3월부터 1933년 1월까지 하와이국민회가 교민단으로 바뀌면서 신문 발행도 교민단이 주관하였다. 국민회와 동지회가 통합을 추진한 1938년 11월에는 『국민보』를 기관지로 하고 『태평양주보(太平洋週報)』는 영문으로 발행하기로 하였다. 1942년 1월 21일부터는 『국민보』와 함께 발행해 오던 동지회의 『태평양주보』가 합본으로 발행되었다. 그러나 이승만(李承晩)의 외교 고문 승차 문제로 국민회와 동지회가 대립하면서 1944년 2월 9일부터 분리되어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