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캐나다의 외교 관계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캐나다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현재까지의 한국과 캐나다 간 외교 관계의 전개 과정과 변화.

캐나다와 한국의 국교 수립

정부 차원에서의 한국과 캐나다와의 관계는 1947년 캐나다가 유엔의 감시 하에서 치러진 남한 총선의 감시단에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949년 캐나다는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하자 캐나다는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총 2만 6791명을 파병하며 참전하였다.

한국과 캐나다 간 공식적인 외교 관계는 정전 협정이 체결된 지 약 10년 후가 되어서야 수립할 수 있었다. 1963년 1월 14일 공식 수교가 이뤄졌고, 1월 22일 이수영(李壽榮) 유엔 대사가 초대 대사로 신임장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양국 관계는 정상적이긴 했지만 특별하지는 않았다. 당시 양국 간에는 교류가 미미했고, 그래서 주 캐나다 한국대사관이 1965년이 되어서야 개설되었고, 주한 캐나다대사관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73년이 되어서야 설치되었을 정도였다. 한편,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인들의 캐나다 이민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 정부가 1970년 2월에 밴쿠버 총영사관을 개설했고, 이어 5년 간격으로 1975년 8월 토론토 총영사관을, 1980년 8월 몬트리올 총영사관을 설치하였다.

1980년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이 지나친 대미 의존도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하며 보다 광범위하고 활발한 다자 외교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수출 주도형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한국의 대외 교역량이 급속도로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한국과 캐나다 간 교역량도 빠르게 증가하여, 공식 수교 후 18년만의 정상들 간의 상호 방문 성사와 함께 양국 간의 외교 관계가 급진적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 12월에 양국은 이중 과세 방지 협정을 체결하였다. 캐나다에 이미 많은 한인 이민자가 거주하고 있었고, 양국 간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의회는 한인들의 현지 사회에 대한 기여를 인정해서 개천절인 10월 3일을 ‘한인의 날’로 제정, 선포하였다. 이후 1989년에는 한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21개 태평양 연안 국가들로 구성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탄생하기에 이르렀고, 한국과 캐나다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의 창립 회원국으로서 더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1990년대에 들어서는 경제적인 교류를 뛰어넘어 포괄적인 동반 협력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1993년 시애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 회담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 장 크레티엥(Jean Chretien) 연방총리는 ‘한국-캐나다 특별 동반자 관계 협정’[Korea-Canada Special Partnership Agreement]을 체결하였다. 무역과 투자, 교육, 이민, 관광을 포함한 다방면에서의 상호 관계를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협정이었다. 아울러 1994년 5월에는 한국-캐나다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었다. 양국 시민이 입국 비자 없이도 상대 국가에 최대 6개월까지는 체류할 수 있게 하는 협정이었다. 또한 1995년 1월에는 범죄인 인도 조약, 2월에는 사법 공조 조약을 각각 체결하고, 5월에는 정보 통신 양해 각서, 9월에는 환경 협력 양해 각서를 각각 주고받고.1996년에는 한국-캐나다 취업 관광 비자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비경제적 분야에서의 밀접한 교류도 매우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었다.

2000년대

20세기 말의 외교적 분위기는 21세기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2003년 1월 4일에는 한국-캐나다 수교 40주년 기념식이 서울과 오타와에서 각각 거행되었고, 1996년에 체결된 한국-캐나다 취업 관광 프로그램이 대폭 개선되었다. 18~25세였던 참가자 연령이 18~30세로 연장되고, 인원도 100명에서 200명으로 확대되고, 체류 기간 역시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되는 등 양국의 교류 기회가 더욱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2005년 7월에는 한국-캐나다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을 위한 공식 협상이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3차례의 지난한 협상 과정에도 불구하고 2008년 소고기 광우병 검역 문제가 대두되면서 한국-캐나다 자유 무역 협정은 장기적인 교착 상태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의 결속은 계속 강화되었다. 2008년 11월에는 항공 자유화 협정[Open Skies Agreement]을 체결해서 항공 시장의 상호 개방과 함께 양국 간의 모든 항공 서비스를 자유화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아울러 11월에는 G20의 출범과 함께 한국이 회원국이 되고, 2009년 9월에 G20이 정식으로 G8[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어 2010년에는 한국과 캐나다가 G20 공동 의장국으로서 2010년 6월에는 토론토에서, 11월에는 서울에서 각각 G20회의를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G20회의가 한국과 캐나다 간 관계를 더욱 긴밀한 상호 협력과 대화의 관계로 만들어 나가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된 것이었다.

한편, 2014년에는 장기간 진전을 보이지 못했던 한국-캐나다 자유 무역 협정이 정식으로 체결되었다. 한국이 캐나다와 자유 무역 협정을 맺은 첫 번째 아시아 국가가 되었고, 양국 간 교류의 폭과 깊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넓어지고 깊어지게 만드는 협정이었다. 한국-캐나다 자유 무역 협정이 체결되는 데에는 캐나다의 한국계 상원 의원인 연아 마틴의 노력도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과 캐나다 양국은 1960년대 수교 이후로 특히 1980년대 들어서 급속도로 진전되기 시작한 경제적 교류를 통해서 양국 교류의 물꼬를 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는 거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긴밀한 상호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참고문헌
  • 『캐나다 한인사』(토론토 한인회, 2013)
  • 「한국계 최초 캐나다 상원 의원 ‘연아 마틴’」(『조선일보』, 2015.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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