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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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미국 |
시대 | 현대/현대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8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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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행을 금지해 오던 미국 정부가 1976년 카터 행정부에 와서 이를 해제하였다. 북한 여행 해제 조치는 미주 한인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된 것이다. 1970년 후반부터 많은 미주 한인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그중에는 임창영[전 유엔 대사], 노광욱, 지창보 등 미주 민주국민연합[약칭 미주 민련] 관련 인사들도 있었다. 197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가 반유신, 반정부 운동을 전개한 최덕신[전 외무부 장관, 워싱턴 D.C. 및 미주리주 거주]은 1978년 11월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북한과의 교류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미주 한인 사회에 영향을 끼치면서 더욱 활성화되고 공식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1981년 최덕신, 최홍희[예비역 장성, 토론토시 거주], 김성락[전 숭실대 총장.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한 목사] 등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을 직접 면담하고 공동 성명을 발표하면서, 미주 한인 사회와 북한과의 교류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1980년대의 방북 활동은 기독교 및 학계, 북한을 고향으로 둔 미주 서부 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김성락 목사는 북한 방문 직후 8월 3일에 “북한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최덕신, 최홍희, 김성락의 북한 방문으로 말미암아 이후 1980년대 공식적이고 다양한 종류의 북한 방문단이 잇달았다. 또 미주 한인 사회에 『분단을 뛰어넘어』등과 같은 북한을 알리는 서적이 출판되었고, 이산가족 찾기 등의 교류 사업을 전문적으로 표방하는 미주 한인의 통일 운동 단체들이 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