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폭동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92년 4월 29일
정의

1992년 4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재미 한인에게 피해를 준 흑인들이 일으킨 폭동.

개설

4·29 폭동은 1992년 4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경찰의 흑인 구타 사건이 무죄 판결 난 것에 불만을 가진 흑인들이 일으킨 폭동이다. 미국에서도 가장 심각한 인종 폭동으로 기록되는 4·29 폭동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은 한인들이었다. 폭동 과정에서 다수의 한인 상점들이 약탈당하고 파괴되는 등 큰 재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한인들은 로스앤젤레스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피해를 극복하였다. 이후 다양한 시민 단체 활동을 전개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며 미국 주류 사회에서 한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더욱 굳건히 하였다.

역사적 배경

1992년 4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로드니 킹(Rodney King)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들이 무죄로 방면된 데 불만을 가진 흑인들이 상점을 파괴하고 약탈하는 등 폭동을 일으켰다.

경과

4·29 폭동으로 2,45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1만 1700명이 체포되는 등 그 규모가 상당히 커 미국에서도 가장 심각한 인종 폭동으로 기록된다.

결과

4·29 폭동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한인들이었다. 폭동 과정에서 한인이 소유한 2,280개의 상점이 약탈당하고 파괴되는 등 4억 달러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 이는 전체 폭동 피해의 절반 정도로 한인이 입은 피해 규모는 코리아타운 상가가 불바다가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상당히 심각했다. 그러나 한인 사회는 4·29 폭동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큰 변화를 모색한다. 한인들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의식이 커지면서 한미연합회[Korean American Coalition, KAC], 남가주 한인노동상담소[Koreatown Immigrant Workers Alliance, KIWA], 미주동포전국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Korean Americans, NAKA] 등 다양한 시민 단체들의 활동이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또한 재미 한인 사회의 젊은 세대들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젊은 세대들은 폭동 직후 평화 대행진을 주도하고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있는 아드모어 공원에 10만 명을 집결시켜 평화 집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4·29 폭동으로 한인들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로스앤젤레스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이를 극복해 냈다. 이후 미국 주류 사회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면서 한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더욱 굳건히 만들었다.

참고문헌
  • 양영균 외, 『다민족 관계 속의 LA 한인』(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장태한, 「한인과 타인종·타민족의 관계 변화」(『북미주 한인의 역사』상, 국사편찬위원회, 2007)
  • 이상갑, 「LA 4·29 사태, 미국 사회의 정치학: 캐나다 한인 소설 『블랙 죠』[어윤순]를 중심으로」(『미주 지역 한인 문학의 어제와 오늘-캐나다·미국·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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