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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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미국 |
시대 | 현대/현대 |
성격 | 사회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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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의 4·29 폭동과 1990년대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계기로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재미 한인 사회 운동.
1990년대 한인 사회 운동은 남북 UN 동시 가입, 군부 체제 종식 등 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4·29 폭동의 영향을 받으며 상당한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미주 내 한국 민주화 운동 조직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연합이 한국의 군부 체제 종식과 함께 1989년 해체되었다. 그리고 통일 운동을 주도했던 조국통일북미주협회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에 참여하여 통일 운동을 계속 전개하다가 1997년 해체되었다. 그러나 재미 통일 운동가들은 재미동포전국연합,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등을 설립하고 계속해서 미주 내 통일 운동을 이끌었다.
또한 재미한국청년연합은 1992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에서 탈퇴한 후 사회 운동의 영역을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소수 민족 인권 운동으로 확대하면서 독자적인 운동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1990년대 미주 한인 사회 운동에서 주목할 것은 1992년 4·29 폭동으로 인해 한인으로서 소수 민족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4·29 폭동을 겪으면서 젊은 세대가 한인 사회 운동에 직접 참여하였고[5·2 아드모어 공원 평화 집회], 다양한 한인 단체에서 한인들의 권익을 위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198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된 한미연합회는 4·29 폭동 직후 한인들의 피해 사실을 널리 알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였고, 1992년 3월 설립된 남가주 한인노동상담소는 4·29 폭동 이후 한인들의 피해 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재미 한인 사회의 노력으로 미국 서부 지역뿐만 아니라 동부 지역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에서 다양한 한인 단체가 참여하여 소수 민족 운동이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