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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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미국 |
시대 | 현대/현대 |
성격 | 사회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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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국에서 유신 독재에 항거했던 시기에 미국 서부 지역에서 벌어진 재미 한인 사회 운동.
1970년대 미주 한인 사회 운동은 유신 독재에 항거한 한국 민주화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성장하였다. 특히 1971년 김대중의 미국 망명은 미주 한인 사회 운동을 한국 민주화운동의 방향으로 이끈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70년대 미주 한인 사회 운동은 유신 독재에 항거한 한국 민주화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성장하였다. 특히 1971년 김대중의 미국 망명은 미주 한인 사회 운동을 한국 민주화 운동의 방향으로 이끈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대중은 1973년 7월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미주본부[Korean Congress for Democracy and Reunification in North America]를 조직하고 미주 지역 한국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였다. 김대중 납치 사건 후에도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미주본부는 1974년 11월 2대 의장으로 김재준을 선출하고 다양한 사업을 계속 전개하였다.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미주본부는 1977년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전국 단일 조직을 지향하며 한국민주화연합운동[UM: The United Movement for Democracy in Korea]으로 재편하였다. 한국민주화운동연합은 조국민주회복남가주국민회의, 재미민주운동연합 등 다양한 단체를 흡수, 통합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미주본부 일부 인사들이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그 결과 진보적 입장을 내세운 임창영 등이 중심이 되어 1977년 6월 미주 민주국민연합을 결성하여 통일의 기치 아래 북한과 밀접관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였고, 주한 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였다. 한편 기독교와 보수적 세력과 밀접한 연대를 가진 한국민주화연합운동은 1979년 한국에서 결성된 민주주의국민연합과 공동 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민주주의국민연합 북미지부로 개편하였다. 한편 하와이에서는 1978년 한인권리투쟁위원회가 결성되어 미국 내 소수 민족으로서 한인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권리를 쟁취하기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상당히 성공적으로 전개되어 한인권리투쟁위원회는 1978년 이후 매년 10월 1일을 ‘한인 투쟁 승리의 날’로 제정하고 행사를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