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전시자금위원회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3년 5월
최초 설립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정의

1943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에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재미 한인들에게 전시 공채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설치한 산하 단체.

개설

일본이 1941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주의 오아후섬 펄 하버[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한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이 일본에 전쟁을 선포하자 캘리포니아의 재미 한인들은 조국의 독립이 이뤄질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이민 초기부터 조국의 독립에 초점을 두고 애국 활동을 행했던 재미 한인들은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거주국인 미국의 승리를 기원하며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하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캘리포니아 재미 한인들은 로스앤젤레스대한인국민회 본부를 중심으로 미국의 주 방위병으로서의 의무를 위해 군에 자원하고 전시 공채 판매를 위해 봉사하며 적십자사 후원에 진력할 목적으로 특정한 기술이 있는 자들은 적합한 활동에 자원할 것을 결의하는 한편 대한인국민회 집행부 예하로 국방과를 설치하기도 했다.

1941년 12월14일, 민중대회에서 집행부는 미국 국방 후원을 위한 인적·물적 지원 방안을 발표하여 한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였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적십자사 로스앤젤레스지회는 12월13일자 공문에서 집행부 국방과에 적십자 후원에 관한 모든 사무를 위임하였고, 집행부는 이 사무를 한국여자애국총본부에 위임하여 효과적인 수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특히 로스앤젤레스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는 1941년 12월 20일 미 재무부 국방공채국 캘리포니아 지국장에게 북미 한인에 대한 국방 공채 및 스탬프 발매를 연합회 집행부로 위임해 줄 것을 요청하여 위임권을 승인받았고, 조직적인 국방 공채 발매 활동을 전개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방 공채 매입을 촉진하기 위해 1943년 5월 집행부 산하에 ‘한인전시자금위원회[Korean-American War Savings Committee]’를 구성하여 미국 내 외국인들로 구성된 전시공채발매 외국인단체위원회와 공동으로 발매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까지 약 84만 달러의 국방공채를 구매했다. 이때 조직된 한인전시자금위원회에는 국민회, 동지회, 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 대한여자애국단 대표들이 골고루 참여하였다.

의의와 평가

한인전시자금위원회를 통한 국민회 집행부의 이러한 노력은 국방 공채 구입활동을 추진하게 되면서 재미 한인들이 미국의 국방에 충성하고 있다는 홍보를 할 수 있었음은 물론 미국 사회에서 재미 한인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참고문헌
  • 홍선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연구: 1941~1945」(한양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2)
  • 김지원, 「캘리포니아 한인 사회의 변화와 특성 연구(1903~1945)」(명지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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