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祖國民主回復南加州國民會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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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
시대 | 현대/현대 |
설립 시기/일시 | 1975년 2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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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
성격 | 민주화 운동 단체 |
설립자 | 김상돈 등 |
1975년 2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에서 창립된 재미 한인 민주화 운동 단체.
조국민주회복남가주국민회의는 1975년 2월 8일 조국자유수호회, 교포문제연구회,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서부 지역 참가자 등 40여 명이 모여 단체를 발족하고 김상돈, 이용운, 차상달, 김신찬, 홍동근이 대표 위원을 맡았다. 1975년 3월 22일 형법 개정[정부 비방과 사대적 언동 규제] 반대 시위, 5월 6일 민권 회복을 위한 기도회, 5월 30일 정치 탄압 반대 시위, 6월 20일 김지하 구출을 위한 24시간 금식 기도회 등을 시작으로 1970년대 후반 미국 서부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였다.
한국의 유신 독재 체제를 반대하고 민주 체제의 재건을 위한 범교포적 민주 회복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를 근거지로 삼아 설립하였다.
1977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민주화 운동권 내부에 민주 운동과 통일 운동의 주도권 문제로 내분이 가시화되면서 1977년 9월 25일 보수적 민주 운동 인사 김상돈이 상임 대표를 사임하고 진보적 통일 운동의 인사였던 차상달이 선출되었다.
1976년 5월 13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에서 김대중 등 명동 사건 인사 석방을 위한 데모를 하였고, 1977년 10월 22일 백악관과 국제연합본부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1978년 10월 9일 박정희 정권의 만행을 알리는 화보를 제작 및 배부하였으며, 10·26 사태 당일에도 코리아 타운에서 민주화 시위를 개최하였다. 1980년 5월 20일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규탄하고 대책을 제시하였으며, 1981년에는 김상돈 주도로 전두환방미규탄총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1980년 전후 전국적 규모의 운동 조직에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조국민주회복남가주국민회의의 거두였던 김상돈은 계속해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다가 1986년 4월 30일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