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청년조국통일협의회

한자 美州靑年祖國統一協議會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88년
해체 시기/일시 2001년
정의

1988년 8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에서 8·15 남북학생회담을 앞두고 결성된 청년 통일 운동 조직.

설립 목적

민족 대단결, 자주, 평화 통일, 해외 동포의 단결로 조국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89년 7월 1~8일까지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개최되자 미주에서는 미주 청년조국통일협의회의 주도하에 시애틀의 통일형제회, 뉴욕의 기독청년학생회, 조국사랑시카코 등 8개 단체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준비미주통일청년협의회를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하였다.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준비미주통일청년협의회는 축전 동참을 통해 미주 청년 학생 운동의 단결을 도모하고 통일 운동을 대중화, 활성화시킨다는 원칙으로 미주대표단을 구성하여 7월에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 시카고, 토론토 등 미주 전 지역에서 24명의 대표단을 확정하고 로스앤젤레스 아드모어 공원에서 대표단 출정식 및 범동포통일촉진대회를 개최하였다.

1991년 2월 미주 청년조국통일협의회의 주도하에 로스앤젤레스의 민중문화연구소, 샌프란시스코의 청년문화원 회원 40여 명이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조국 통일의 일보 전진을 위하여’라는 슬로건 아래 ‘애국 청년들을 위한 수련회’를 개최하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운동과 미주 운동에서 청년, 학생들의 역할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1992년 5월 ‘92청년학생통일축전의 성사와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결성을 위한 회의’가 베를린에서 열렸고 미주 청년조국통일협의회[하용진]이 재일 한국청년동맹, 재일조선청년동맹과 함께 해외 대표로 참석하고 8월 15일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을 결성할 것을 합의하였다.

1993년 김영삼의 문민 정권이 들어서고 군부 독재가 종식되면서 통일 운동의 대중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통일 운동의 위세가 꺽이면서 미주의 운동 조직도 서서히 침체되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도 미주 청년조국통일협의회는 1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의장단회의[베를린]와 재일동포청년학생 통일대행진 및 범민족대회[8월, 도쿄]에 참가하여 해외 연대의 강화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대중화의 실패와 재생산 구조 상실로 2001년 4월 상임위원회에서 해체를 결정하였다. 이후 이를 대체하기 위해 통일맞이나성포럼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의의와 평가

미주 청년조국통일협의회는 1988년 8월 10일에 8·15 남북학생회담을 앞두고 민족 대단결, 자주, 평화 통일의 원칙 천명과 해외 동포의 단결로 조국 통일 달성을 목적으로 결성된 청년 통일 운동 조직이다. 육대성, 조준일, 박찬일, 박진아, 하용진, 이은주, 남관우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 이 중 육대성, 박진아는 해외 대표로 방북을 하여 8·15 남북학생회담에 참석하여 백두산부터 남북학생회담의 장소인 판문점까지 통일대행진을 하기도 했다. 미주 청년조국통일협의회 결성 직후 그 산하 조직으로 남가주의 민주청년학생회가 1988년 10월1일, 북가주의 애국청년학생회가 11월 20일 조직되면서 미주 유일의 청년 운동 단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북미주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7)
  • 선우학원 외, 『미주 동포 민족 운동 100년사』(일월서각, 2009)
  • 『민족통신』(2003. 1. 13)
  • 『한겨레신문』(2012. 4. 13)
  • 재미동포전국연합회(http://www.kanc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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