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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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네브래스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14년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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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주식회사 |
설립자 | 안재창|임동식|최경오|이명섭 |
1914년 12월에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안재창 등 3인이 발기하여 설립한 회사.
1914년 12월에 네브래스카에서 안재창, 임동식, 최경오, 이명섭 등의 발기로 채소를 재배하여 판매할 목적으로 조직된 회사이다. 자본금 총액을 1만 달러로 정하고 매주 10달러씩 1,000주를 모집하여 캐리톤에서 4년 동안 채소 농사를 하였다. 이것이 재미 한인 최초의 채소 농사였다.
발기인 중에서 안재창, 임동식, 최경오, 한시호, 이명섭은 투자를 많이 하고 한인농업주식회사에서 농사를 함께 지은 사람들이었다. 조진찬은 직접 관여하지 않고 대신 큰아들 조대흥이 투자에 참여했다. 이 외에 주식 회사를 설립하는 데는 당시 대학에 다니며 농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명섭, 한시호의 영향도 컸다. 콜로라도, 네브래스카에 농지를 구입한 이들은 채소류를 재배하였다. 당시 미국인의 식생활이 채소를 많이 먹는 것으로 바뀌는 추세여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어 주주들에게 이윤을 분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종결과 함께 미국이 정치적으로 큰 격변기에 들어갔으며, 독감이 유행하여 약 50만 명이 죽고 400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는 등 사회가 매우 불안정하였다. 또한 소련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고, 미국 내 소수 민족 문제도 불거지면서 노동자나 소수 인종을 박해하는 사건도 많이 발생하였다.
사회, 경제적 불안 속에서도 당시 러벌(Lovell) 지역은 사탕무를 처리하여 설탕을 생산하는 산업이 발달하였다. 러벌 지역에서 관개시설을 잘 갖춰 나가고 있고 경력 있는 농업 노동자를 구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안재창과 동업자들은 한인농업주식회사를 정리하고 이윤을 주주들에게 분배하였다. 회사를 정리한 동업자들은 러벌에서 사탕무 농사를 시작하였다.
한국유학생회가 발간하는 『한국유학생회논평』에 광고도 내고, 나름의 상업적 성공도 거두었으나 1918년 한인 주식 회사로는 처음으로 결산 보고를 하면서 이윤을 주주들에게 분배하고 해산하였다. 그러나 안재창을 비롯한 주요 발기인들[임동식, 최경오, 조대흥 등]은 러벌 지역에 토지를 새로 구입하고 개간하여 사탕무 농사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국인들이 채소를 많이 먹는 것으로 식생활이 바뀌는 추세를 이용하여, 반찬으로 애용되던 절여 먹는 채소류로 양배추, 오이, 꽃양배추, 당근 등을 재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