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하

원어 항목명 Hong Seungha
한자 洪承夏
영문 Hong Seungha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미국 하와이주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3년
수학 시기/일시 1902년
몰년 시기/일시 1918년 4월
출생지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군 영흥도
활동지 미국 하와이주
원어 항목명 Hong Seungha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신민회 회장
정의

일제 강점기 미주 하와이주에서 활동한 감리교 목사이자 재미 한인 독립운동가.

개설

홍승하(洪承夏)[1863~1918]는 1903년 해외 선교사로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 가서 신민회를 조직하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흩어진 한인들에게 선교하였다. 홍승하는 재미 한인들의 지위 향상·권익 옹호를 위해 일하며 항일 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였다.

활동 사항

홍승하는 1863년 경기도 남양군 영흥도(靈興島)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다가 국운이 기우는 것을 보고 일본에 건너가 무관학교에 다녔다. 귀국 후 국권 수호 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중 인천에서 미감리회 선교사 존스[George Heber Jones, 趙元時]를 만나 1901년 3월 세례를 받고 개신교에 입교하였다. 한국 최초의 기독교 지도자 양성소인 감리교신학회[현 감리교신학대학교] 1년 과정에 들어가 1902년 과정을 마치고 고향인 남양으로 가서 남양감리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1902년 12월 선교사 존스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미국 이민단이 조직되어 하와이로 떠날 때 용동교회 파견 해외 선교사로 이민단과 함께 1903년 1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1903년 8월 윤병구(尹炳求)·문홍식 등과 미주 한인 최초의 애국 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추대되어 교포의 지위 향상과 권익 옹호를 위해 일하며,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1월 안정수·우병길 등 교인들과 한인감리교선교회[현 하와이 한인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모체]를 창설하였다. 1905년 정식으로 한인감리교회를 세우고 하와이 각 지역의 사탕수수 농장에 흩어진 한인들을 상대로 선교 활동과 교회 건립 운동을 펼쳤다. 홍승하는 1905년 7월 건강이 악화되자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인천 내리교회 전도사로 봉직하였으며 강화와 인천, 남양 등지로 복음사로 일하였다. 또한 충청남도 공주 지방 최초 순회 목사로 활약하였고 1912년 수원읍교회 담임목사와 수원 지방 순회 목사로 전도하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은퇴하였다. 1913년 미국 배브콕스[Mrs.Althera Babcocks Teither] 부인이 헌금한 미화 150달러[300원]과 기존 교회에서 나온 초가 재목을 판 값과 교인들이 헌금한 돈 등 900여 원으로 40평의 함석교회[현 수원종로교회]를 세웠고 교회 안에 삼일여학교(三一女學校)를 두었다. 1916년 건강 악화로 요양하던 중 1918년 4월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1·3·4·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1971·1972·1973)
  • 『독립운동사 자료집』9(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 김택용, 『재미 한인 교회 75년사』(생명의말씀사, 1979)
  • 유동식, 『하와이의 한인과 교회-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85년사』(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1988)
  • 이덕희, 『하와이 이민 100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중앙M&B, 2003)
  • 『신학월보』(1901. 10)
  • 『기독신보』(1918. 4. 24)
  • 『신한민보』(1944. 2. 24)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