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William H. F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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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William H. Fry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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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William H. Fry |
성격 | 목사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주 감리사로서 하와이 이주 재미 한인들을 위해 활동한 감리교 목사.
1903년 첫 한인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할 당시의 감리사인 조지 피어슨과 1904년 12월 피어슨의 후임으로 온 워드만에 이어 부임한 감리사였다. 윌리엄 프라이는 1946년 은퇴할 때까지 재미 한인 이민 교회를 돌보았다. 윌리엄 프라이는 당시 한인기숙학교[The Korean Compound School] 교장이던 이승만의 교육 정책인 여학생 수용, 한국어와 한국사 교육이 하와이령의 인종 혼합 정책과 배치된다고 보고 비판적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감리교 임원단의 이승만에 대한 우려와 견제에 맞서서는 오히려 이승만을 옹호하고 해명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프라이는 1914년부터 32년간 하와이 감리사로 재직한 후 1946년 은퇴하였다.
초기 하와이 한인 이민사회에 우호적이고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호놀룰루 한인감리교회[현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가 1960년 건립한 교육관을 프라이홀이라고 이름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