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종교/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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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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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2001년 1월 30일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강서군 |
성격 | 시민운동가 |
성별 | 여 |
미국 하와이와 한국에서 활동한 시민운동가이자 여성지도자.
한국YWCA 회장이던 김활란 박사의 요청으로, 1947년 한국에 고문총무로 부임한 박 에스더는 맨처음 명동1가 1번지의 적산가옥을 인수하여 회관을 확보하였으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YWCA 본부는 정부를 따라 부산으로 피난했고, 박 에스더는 다른 미국인들과 미국으로 철수했다가 유엔에서 외원단체에 발급하는 단기여권을 입수하여 부산으로 재입국했다. 박 에스더는 영어와 한국어에 능숙하고 한국과 한국 문화 및 국제사정도 잘 알았기에 부산에서 교회와 외원단체들을 한국의 정부기관 및 관련단체와 연결하는 일을 담당했다. 또 미국YWCA와 세계YWCA에 편지로 한국 상황을 알려 각국 YWCA의 원조를 받았다.
한국전쟁 후에는 여성의 직업과 노동에 관한 정책을 발표하고, 1970년대에는 가족법 개정운동과 타일, 도배, 페인트 훈련을 통한 여성 직종도 개발했다. 파출부 교육교재 개발과 돌봄노동 전문화, 시민인권과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1980년 미국 하와이의 양로원으로 거쳐를 옮겼고, 2001년 1월 30일 사망하였다.
1964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한국 재건국민운동 본부 외국인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박 에스더의 공적을 기려 1966년 대통령 공익포장, 국민훈장 석류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