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Young Oak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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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玉 |
영문 | Young Oak Kim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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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1년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1951년 |
몰년 시기/일시 | 2005년 12월 29일 |
출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
학교|수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
묘소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푸오와이나 드라이브 2177 |
원어 항목명 | Young Oak Kim |
성격 | 군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한미박물관 이사장 |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에 참전하여 활약한 재미 한인 군인.
김영옥은 191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벨몬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로스앤젤레스시립대학에 진학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징집령에 따라 22세 대학 재학 중 미 육군 사병으로 입대하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니세이(Nisei) 부대 제100 보병대[The 100th Infantry Battalion, 이후 The 442nd Regimental Combat Team]의 지휘관이 되어 탁월한 전공을 쌓았다. 1944년 9월 소령으로 진급하고, 나아가 미 육군과 프랑스, 이탈리아 정부가 주는 군 최고의 무공 훈장을 받았다.
김영옥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어 실력 덕분에 육군 치안부[Army Security Agency]에 배치되었고, 소수 민족 출신으로는 최초로 육군 전투 대대를 지휘하기도 하였다. 미 육군보병학교 교관, 독일 주둔 육군 대대장, 주한미군 군사 고문단[1963~1965] 등을 역임하였다. 6·25 전쟁 중에는 전쟁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을 설립하였다.
1972년 대령으로 퇴역한 후 2005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를 위해 교육적이고 사회적인 봉사 활동을 하였다. 미국 귀국 후 로스앤젤레스의 한인건강정보센터, 한미연합회, 한미박물관 등을 만드는 데 공헌하였고, 인종 차별 반대 운동과 가정 폭력을 당하는 아시아계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 아시안 여성 포스터 홈도 설립하였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의 조사위원회에도 참가하고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을 보이며 활약하였다. 2011년 6월 20일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포털[msn.com]에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 영웅 16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2005년 12월 29일 사망하였다.
김영옥의 묘소는 하와이주 호놀룰루 근처 국립태평양기념묘지의 100대대 묘지 근처에 있다.
김영옥은 1941년과 1951년 미국 은성 무공 훈장을 받았고, 1945년 이탈리아 최고 무공 훈장, 1950년 프랑스 십자 무공 훈장, 1951년 동성 무공 훈장, 2003년 대한민국 국민 훈장 모란장, 2004년 이민 100주년 이민 영웅, 2005년 레종 도뇌르 무공 훈장[오피시에 등급], 2005년 태극 무공 훈장, 한국방송공사 KBS 해외 동포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였다. 2015년 1월 서울에 김영옥 평화센터가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