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Un H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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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焉 |
영문 | Un H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0년 2월 27일[음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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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51년 3월 25일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묘소 |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
원어 항목명 | Un Hong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대의회 의장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주에서 활동한 언론인, 문필가, 역사가이며 독립운동가.
홍언은 아버지 홍순학과 어머니 이씨의 여섯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선대의 고향은 경상남도 영덕군(盈德郡) 상리(上里) 18-1번지이다.
홍언은 188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홍종표(洪宗杓)이다. 별명은 미스터 국민회이며 필명으로 동해수부, 추선, 해옹(海翁) 등을 사용하였다. 10대에 가정에서 전통 유학을 공부하였으며 20세를 전후해서 광주와 춘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학문을 독학하였다. 1902년 양지(量地)사무소에서 일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사숙에서 공부하였다.
1904년 9월 이민 노동자로 하와이에 도착하여 엘리엘리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였다. 대한자강회 하와이지회를 결성하고 『대한자강회 포와부지회월보』를 편집, 간행하였다. 1907년 12월 창간된 『자신보』의 편집에도 관여하였으며, 하와이 한인 단체들이 합동하여 결성된 한인합성협회에서 1907년 10월 22일 창간한 주간지 『합성신보』 편집에도 참여하였다. 미주와 하와이 한인 단체가 통합되어 『신한국보』로 이름이 바뀌자 1909년 2월 12일 발행된 창간호부터 발행 겸 편집인으로 활약하였다. 1909년 5월 국민회 호놀룰루지방회의 학무원으로 선임되었다. 1907년 기독교 감리회의 학습을 받고 1908년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1909년 하와이 한인기독청년회에 입회하였다.
1911년 북미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이후에 『신한민보』 편집과 주필을 맡았다. 언론 활동을 하면서 홍언으로 개명하고 동해수부와 추선이라는 필명을, 1940년대 해옹(海翁)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였다. 1911년 8월 『대동위인안즁근뎐[大東偉人安重根傳]』을 저술하였다. 1912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상항지방회장에 선임되었고 1913년 9월 상항 한인감리교회의 청년회 회장,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대의회 의장, 또 북미지방총회의 학무원과 상항지방회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 5월 13일 창립된 흥사단의 8도 대표 중 경기도 대표로 참여하였다. 1915년 1월부터 1919년 1월까지 신한민보사 편집원으로 근무하며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총무직도 겸하였다.
1919년 4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중국인 화교를 상대로 독립 의연금을 모집하는 유세원(遊說員)으로 선정되어 스톡턴을 시작으로 하여 각지에서 모금하는 일을 하였다. 1921년 구미위원부 화교위원으로 위임되어 캐나다를 거쳐, 미국 각처, 그리고 파나마 등 중앙아메리카를 순방하고, 8월 남미의 페루에 도착하여 독립 의연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고 1922년 6월 샌프란시스코로 귀환하였다. 1924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3명의 발기로 교민들의 문예상의 감식과 한인 사회의 교화에 공헌하고자 이문회(以文會)를 조직하여 신문화·신문예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38년부터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 서기를 맡아 국민회 회무를 보며, 『신한민보』의 편집도 지원하였으며 1940년 또다시 『신한민보』 주필에 선임되었다. 1943년 6월 사직을 청하자 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명예기자로 선임하여 국민회의 기록 존안과 통신 사무를 맡았다. 해방 후인 1945년 9월 다시 『신한민보』 주필을 맡았다. 1949년 말 뇌일혈로 쓰러진 뒤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51년 3월 25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홍언의 저서로는 1911년 8월 출간된 『대동위인안즁근뎐[大東偉人安重根傳]』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홍언의 공적을 기리어 1995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